"피의자 진술, '신빙할 수 있는' 경우도 증거 안돼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법정 증거 채택이 한층 더 어려워지게 돼 재판 과정에서 대혼란이 예상된다. 최근 대법원은 그 동안 논란을 빚어 온 형사소송법 제312조 1항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와 관련, “원진술자(피고인이 된 피의자)가 법정에서 (그 내용을) 진술하지 않으면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대법원은 ‘원진술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하더라도 (검찰 진술조서 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경우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는 내용의 312조 1항 단서 조항마저 무력화시켰다.
“(비록) 조사서에 기재된 피고인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진 경우라고 해도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형소법 312조1항은 ‘검사 등의 신문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으려면 원진술자의 (법정)진술에 의해 그 성립이 진정함이 인정된 때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실질적 진정 성립 외에 간인.서명.날인 등 조서의 형식적 진정 성립도 원진술자의 진술이 있어야 성립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빙할 수 있는 상태의 진술조서에 한해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의 312조 1항 단서를 사문화한 혁신적 판례인 셈이다.
이 같은 대법원의 새 판례는 “피의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할 경우 단서 조항에 의해 신문조서가 증거로 채택돼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쐐기를 박는 것이어서 관련 법 조항 개정 요구 등 검찰의 대응이 주목된다.
어쨌든 이 같은 새 판례로 피고인이 법정에서 검찰 조서를 전면 부인하고, 증거(물증)가 없을 경우 무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구나 피해자가 없는 사건의 경우 검찰 조사때 범행을 시인했다고 해도 법정에서 부인하면 죄가 있더라도 신문조서 자체가 증거로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될 수 밖에 없게 됐다.
따라서 이 경우 검찰은 증거로 혐의를 입증할 수 밖에 없고, 법원도 직접 피고인 신문과 증거재판인 공판중심주의로 사건을 판단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의 새 판례가 된 사건은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위반(향정) 검찰 상고 사건이다.
피고인 A는 피고인 B로부터 필로폰을 매수하고, C에게 건네 줘 교부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A는 검사 작성의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그 실질적 진정성립을 인정(검찰 조서 부인)하지 않았다. 따라서 1,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결국 대법원은 검사 적성 피의자 신문조서에 대해 실질적 진정 성립이 인정되지 않는 만큼, 그 조서에 기재된 피고인의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진 경우라고 해도 이를 증거로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로써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당시 만들어진 312조 1항 단서 조항은 사실상 폐기된 셈이 됐다.
아울러 앞으로 검찰의 수사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증거가 없고, 피해자가 없는 사건의 경우 혐의가 있어도 무조건 법정에서 검찰 조서를 부인하는 사건이 넘쳐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 안팎에서는 312조 단서 조항을 대신할 새로운 조항이 신설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최근 공무원 선거개입 혐의 사건 역시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가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검사가 작성한 조서에 대해 진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312조 1항 단서 조항을 들어 증거로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 오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도 주목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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