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새벽,부산 광안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 프로야구 롯데 투수박동희(39·사진)는 고교와 대학시절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로 아마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지만 프로야구에서는 부상 등으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부산고 3학년때인 1985년 봉황대기에서 ‘방어율 0’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초고교급 괴물투수’로 통했고 고려대 진학 후에도 국가대표 에이스로 맹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입단 제의를 뿌리치고 1990년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박동희는 그해 4월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데뷔전에 7회 구원투수로 등판해 156㎞의 강속구를 선보이며 5연속 탈삼진의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光속구 투수’ ’슈퍼 베이비’란 별명을 얻으며 프로에서도 화려하게 출발했던 박동희는 그러나 코치스태프와의 갈등,부상 등으로 프로무대에서 순탄치않은 길을 걷게 된다.
프로 첫해 선발투수를 바랐던 박동희에게 당시 롯데의 투수코치였던 장명부(2005년 사망)는 ‘구원투수’를 맡겼고 코치진과의 갈등으로 엔트리에서 수차례 빠지면서 데뷔 첫해 10승 7패 7세이브에 머물렀다.
롯데 사령탑이 강병철감독으로 바뀐 이듬 해 14승(9패)3세이브를 거둬 팀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고 1992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2승1세이브로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팔꿈치 부상 등으로 이후 하향곡선을 그려 1996년 4승(5패) 1세이브에 머물렀고,다음 해 삼성으로 트레이드됐으나 삼성에서 5년간 단 7승 밖에 올리지 못한 채 지난 2002년 결국 팀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당한다.
프로 12년간 통산 59승50패 58세이브 평균자책 3.67을 기록한 박동희는 삼성 방출 후 야구계를 떠나 부산에서 음식점 등을 경영했다. 박씨의 빈소는 수영구 광안동 좋은강안병원에 마련됐다.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