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자치도’ 전락 위기
‘빅 3’, 즉 도전역 면세화와 법인세 인하 및 항공 자유화 등 3대 핵심 과제의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있다.
김태환 지사는 2단계 제주특별자치도 과제인 ‘빅 3’에 올인할 태세이나, 중앙부처는 “무슨 소리냐”고 코방귀만 뀌고 있다. 심지어 행정구조 개편과 특별자치도를 제안한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마저 빅 3 요구에 등을 돌렸다.
‘뒷간에 갈 때 맘 다르고 올 때 맘 다르다’는 속담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하긴 그가 해주겠다고 해서 될 수 있게 된 상황이 아니다. 특별자치도가 그의 구상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긴 하나, 지금은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말발이 서지 않아 설사 제주도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어도 뜻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자치 시.군 폐지와 특별자치도는 사실상 노무현 정부 초기 실험적 자치정책과 제주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만들어졌다. 결국 정권의 치적용 한건주의가 그렇듯이 특별자치도 역시 괜히 자치 시.군만 폐지되고, 실속없는 껍데기 특별자치도로 전락할 처지에 놓여있다.
아직도 ‘변방’ 태생적 한계
애당초 국방만 빼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특별자치도에 이양하겠다고 한 노 대통령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다. 도대체 미국의 주정부 형태도 아니고, 헌법에 보장된 특별자치도도 아닌데 무슨 수로 원한다고 지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정부 각 부처 및 국회의 지원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제주도의 현안인 빅 3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며칠 전 제주에 내려 온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병준 씨가 “빅 3가 안된다고 특별자치도가 안되는 게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겠는가.
사실상 그의 이 말은 노 대통령의 뜻일 것이다. “안 될 일에 목 매달지 말라”는 최후 통첩에 다름아니다.
그렇다고 정부 각 부처에 제주출신 고위 인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장관은커녕 차관도 없다. 역대 정부 중 제주출신 장.차관 기용이 지금의 참여정부처럼 가장 적었던 정부는 없었다. 중앙 부처에 제주를 대변할 이렇다 할 제주출신 고위직 인물이 없는 것도 제주의 한계다.
얼마 전 차관회의에서 빅 3 안건이 거부당한 것도 전무한 부처내 발언권과 가장 힘 없는 지역세의 한계때문일 것이다.
그러잖아도 지역 이기주의가 판치는 중앙 부처와 국회에 내세울 인물이 없으니. 제주의 현안은 다른 지방의 지역 이기주의에 뭍히고 희생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국제자유도시다, 특별자치도다’ 자랑하고 있지만, 아직도 ‘변방’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 무대서 일할 인재 키워야
APEC 제주 유치를 부산에 빼앗긴 것은 제주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현지 실사에서는 제주가 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끝내 정치력에 밀렸다.
영향력이 큰 지역 이기주의가 존재하는 한 제주는 계속 변방으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다른 지방과 차별화된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도는 빈 수레에 불과할 뿐이다.
‘특별자치도’처럼 대통령의 정책적 의지에 따라 차별화된 제도는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적극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껍데기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차별화한 제도는 만들었지만, 정작 이에 걸맞은 차별적 예산 지원과 개발정책은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 차관회의나 청와대 측의 빅 3 거부도 다른 지방과의 형평성을 의식한 때문이다.
그래도 믿을 사람은 노 대통령 뿐이다. 노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 가 제주특별자치도의 성공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지금이라도 빅 3 등 특별자치도에 부합하는 지원을 각 부처에 지시해 반드시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
이와 별도로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도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도, 둘째도 인재 양성이다. 중앙 무대에서 제주의 입장을 강력히 대변할 영향력 있는 정치인과 행정가를 대거 배출해야 한다.
누가 뭐래도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과 원희룡 국회의원은 자랑스런 제주인이다. 원 의원은 연초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 절 세배를 했다가 심지어 그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물론 나름대로의 소신 등 정치적 이유가 있어서 그랬겠지만, 결국 사과하는 솔직함도 돋보였다. 이들은 언젠가 국가와 제주발전에 크게 기여할 잠재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제 이들과 같은, 이들보다 더 나은 인재들을 키워 정치권과 중앙정부에 진출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각 부처에 제주인들이 많이 포진해야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변방 괄시와 지역 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