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어른’의 실종
‘사회적 어른’의 실종
  • 강정홍 논설위원
  • 승인 2004.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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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어른’이 없다. 지금 우리는 도덕과 권위의 무규범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어떤 잘못도 가슴에 안는, 그러면서도 잘 잘못을 엄히 따지는 ‘사회적 어른’이 그만큼 아쉬운 요즘이다.

시민사회는 단순하게 개인들의 개별적 이익만의 집합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시민의식도 사회 구성원들의 다원적 이해의 단순한 합산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것을 한데 묶는 결속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지역원로들의 보편적 권위’다. 개인의 사적(私的)이해가 한 지역사회 안에서 사회적 힘으로 용인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보편적 권위에 의해 중화되기 때문이다. 다양화 속에서의 통일성, 변화 속에서 질서를 확립하는 정신적 기능을 아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우리 사회에는 존경하는 원로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고, 도덕적 존경의 대상인 ‘사회적 어른’이 사라지고 있다. 마을과 직장에서 지난날의 인생경험을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리하여 그 이야기가 모범이 되어 자신의 것으로 옮겨 올 어른의 존재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원로의 숫자가 그만큼 많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에 반비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조기 퇴진을 강요하는 조급한 사회분위기 탓일까.

어른은 문란한 질서의 회복자

그 이유를 찾자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어른으로 표현되는 기성세대에 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어른이란 바로 도덕의 규범이고, 문란한 질서의 회복자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른들이 어른이기를 스스로 포기한데 그 원인이 있다.

화를 내야 할 곳에서는 고뇌의 침묵으로 대답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속에서는 중용의 신중함으로 위장하며, 갈등이 있어 헷갈리는 곳에서는 마치 중립의 미덕을 완성하는 듯한 그 비겁함에 그 원인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권위란 원래 ‘명령하는 힘’이기 보다는, 무엇인가 알고 싶을 때 권위 있는 책을 참조하는 것처럼,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권위 있는 의사를 찾는 것처럼 ‘알고 행동하는데 필요한 굳건한 반석’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고 하여 후세들을 욱박지르는 그 알량한 권위주의에도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어찌 이 모든 것을 기성세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겠는가. 평등의식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무너뜨려야 할 권위주의는 그대로 둔 채, 오히려 사회적 힘으로 유지돼야 할 보편적 권위만을 격하시키거나 파괴한 것이 아닌지, 똑같은 비중으로 반성해야 한다. 권위주의를 없앤다는 구실아래 학원에서 스승이 능멸을 당하고, 기성세대면 무조건 배척하는 자라나는 후세들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오만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어른들의 권위주의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전통과 도덕으로 무장되고, 사랑과 존경 그리고 예절로 한데 어우러진 보편적인 권위는 그만큼 존중돼야 한다.

사회적 힘은 ‘보편적 권위’에서

사회관계를 힘의 관계로 보는 것은 너무 일면적이다. 그러나 사회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특징의 하나는 바로 ‘힘’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는 힘은 강압적인 힘을 뜻하지 않는다. 제재를 가하거나 협박함으로써 상대방의 복종을 끌어내는 힘을 나는 무엇보다도 경멸한다. 설득과 교육을 통해 믿음을 변화시킴으로써 상대방의 인정을 유도하는 ‘조건부 힘’ 그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하는 보편적 권위다.

 사회조직 안에서 힘의 본질적 역할은 갈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좋아하는 것은 한정돼 있고, 그것을 선택하려는 사람은 많기 때문에 갈등은 어떤 공동체서나 필연적이다. 이때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도와주는 보편적 권위를 지닌 지역원로가 있는 공동체는 훨씬 효율적이다.

‘사회적 어른’이 되살아나야 한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상실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관리하는 엄격한 자기성찰이 있어야 하고, 자라나는 후세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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