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제공항 면세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곳에서 물건을 사면 면세점 전용 ‘쇼핑백’에 구입품을 넣어준다. 비닐로 된 이 장바구니에는 제주도의 한 명승지 사진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이용객이 점원에게 물어보았다. “이 사진, 참 멋이 있는데, 제주도 어디에 있는가요?” 처음에는 잘 모른다고 했다가 약간은 멋쩍었던 모양인지, 입속으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성산포 쪽에 있는가….” 어이가 없어진 손님이 다시 물었다. “성산포쪽에는 몇 번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높은 산이 없던데요. 아 참, 여기 ‘산방산과 한라산’이라는 설명이 들어있는데 산방산은 어느 방향에 있는가요?” 역시 자신이 없는 듯한 목소리로 “송악산 쪽인가….”한다. “그렇다면 송악산은 어느 편에 있는가요?” 이때 점원의 짜증 섞인 대답이 정말로 가관이다. “바다 쪽에 있어요.” 아니 사면이 바다로 된 제주도에서 바다 쪽이라면, 도대체 동서남북 어디란 말인가. 그렇게 모르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미안해하는 표정조차 없다. 몇 차례 질문을 했던 관광객이 오히려 민망해 하는 모습이었다.
이 쇼핑백에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라는 한글 명칭과, 이 기관 영문 약자인 JDC라는 상표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이 가방은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자체 제작하여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즉, 자기네 회사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디자인되어 있는 사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국제공항은 제주의 관문이자, 얼굴이다. 더욱이 면세점은 우리 도민들도 이용하지만, 주로 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있는 점포이다. 따라서 이곳이야말로 제주도의 모든 것을 홍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도 관광명소인 산방산조차 모르고, 거기에다 불친절하기 까지 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개발센터 당국은 이들 근무자들에게 보다 철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 일간 경제지(2월 22일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도되었다.
『지난 설 연휴에 제주도로 골프여행을 떠났던 성광민 씨(42·가명)는 세 번 놀랐다. 첫째는 김포공항에서 골프백을 메고 제주로 가려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아 괜히 쑥스러웠다는 것이고, 둘째는 현지 골프장을 찾았을 때 앞 뒤 팀이 보이지 않을 만큼 텅 비어있었으며, 셋째는 비용(費用)으로, 사흘 동안 쓴 돈이 100만원을 훌쩍 넘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에 골프를 치러 갔던 사람들은 2박 3일에 70만 원정도가 들었을 뿐이다. 감귤산업이 시장개방으로 무너질 위기에 있는 가운데, 관광산업마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어 ‘관광제주’의 위상을 무색케 하고 있다. 숙박시설도 이미 제살 깎아먹기 식 경쟁이 시작되었고, 유명 호텔들의 설 연휴기간 투숙률은 고작 60∼70%에 지나지 않았다. 렌터카 업계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제주 경기는 가격을 낮추는 방법 말고는 없어 보인다. 사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출범이 이러한 문제를 풀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왔지만, 지금은 그 기대감이 실망으로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도 있을 것이지만, 이 기사의 내용이 오늘 우리 제주도 관광의 현주소라는 데 큰 이의(異意)가 없을 터이다.
관광업계와 전 도민이 제주도의 이미지와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어려울 때일수록 자본 안 들이는 ‘친절한 미소’와 ‘후한 인심’으로, 제주도를 한번 더 방문할 수 있게끔 힘써야 한다. 특히 특별자치도 당국의 분발을 촉구하는 바이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