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민족문학’을 포기한다?
[세평시평] ‘민족문학’을 포기한다?
  • 제주타임스
  • 승인 200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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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억하는가? 당신은 군사정권이 두 눈을 부릅뜨던 1974년 11월 28일 서울 의사회관 강당에서 벌어진 숨 막히던 상황을 잊었는가? 문학평론가 염무웅(廉武雄)이 작성한 ‘문학인 101인’ 선언을 시인 고은(高銀)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낭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선언문을 다 읽기도 전에 들어 닥친 공권력에 의해 고은이 당국에 체포되었다. 나머지 부분은 소설가 황석영(黃晳映)이 겨우 낭독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회가 창립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자유실천문인협회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1987년 9월 17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암울한 시절, 작가회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었고 발을 디딜 언덕이었다. 그런 작가회의가 단체 이름에서 ‘민족문학’을 빼는 명칭 개정안을 놓고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민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외국에서는 극우단체로 오해받고, 국내에서는 좌파 단체로 인식되고 있다는 곳이다. 명칭 때문에 젊은 문인들을 포괄하고 단체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어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명실공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단체로 굳이 '민족'이라는 깃발을 들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도 만만찮다. 세계 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녀 봤지만 '내셔널(national)'이라는 말이 들어간 단체의 회원이라는 점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은 없다. 문학을 포기하더라도 '민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직은 '민족'이라는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백낙청(白樂晴)은, 명칭 변경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명칭에서 '민족문학'이란 표현을 빼는 것이 노선 변화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의 지적처럼 명칭 변경은 형식상의 변화일 수 있다. 하지만 형식의 변화를 가능하게 한 시대정신의 변화를 간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가 황석영도 개인적으론 이미 민족주의와도 결별했다며 세계가 거의 몇 초 만에 인터넷으로 소통되는 현실에서 아무리 내 감정이 소중해도 남과 말이 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설가 조정래(趙廷來)는 ‘민족’을 빼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나타냈다. 그의 주장은, 인종과 민족에 따른 차별은 엄존하며 모든 민족의 독자성과 존엄성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평화와 공존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분단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상황에서는 ‘민족’의 패기는 통일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그의 주장이다.

우리문학사에서 민족문학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1920년대이다. 그 이론은 당시 강렬하게 제기되던 계급문학론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민족문학론이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1970년대에 어느 정도 체계화된 민족문학론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계급론적 시각이 대두됨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90년대의 민족문학은 민족분단의 극복과 사회의 진정한 민주적 변혁을 과제로 삼고 민족사의 현실문제를 바탕으로 한 사실주의적 실천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아무튼 한국의 20세기는 민족주의의 시대였다. 6월항쟁 주역들의 핵심 이념도 민족주의였다. 하지만 민주화 20주년을 맞는 2007년, 진보 진영의 핵심 이념인 민족주의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한 관계자도, 개인적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민족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지만, 회원들의 문제 제기가 있으면 '민족'이란 표현을 빼는 문제를 논의할 수 있으며, 대대수가 동의한다면 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민예총 차원에서 명칭 변경 논의는 아직 없었지만 큰 틀에서 변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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