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뜨거운 가슴, 아름다운 판결
[김광호 칼럼] 뜨거운 가슴, 아름다운 판결
  • 김광호 대기자
  • 승인 2007.0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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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와 검찰이 바람 잘 날이 없다.
판사는 금품수수 등 품위 문제로, 검사는 온당치 못한 수사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
지난해 고법 부장판사가 부정한 돈을 받아 구속돼 파문을 일으키더니, 며칠 전에는 전주지법 정읍지원 모 판사가 조폭 출신 사업가로부터 해외 골프 접대와 향응을 받은 의혹이 제기돼 사표를 썼다.
검찰의 수사 관행도 많이 개선됐지만, 또 억지 수사로 말썽이다. 최근 서울동부지검 모 검사가 제이유그룹 수사와 관련해 피의자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해 물의를 빚었다.
결국 해당 검사는 문책 인사 조치됐고, 엊그제는 검사장까지 사의를 표명했다. 어쩌다 우리 사회 엘리트 판.검사들이 불의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민망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까. 판.검사들의 잇단 불미스런 행태에 오히려 국민들이 더 부끄러워하고 있다.
판.검사는 자기 관리에 더 엄격해야 한다. 법을 수호하고 죄를 판단하는 사람이 법을 무시면서 국민들에게 왜 법을 지키지 않느냐고 말 할수 있겠는가.
법과 원칙이 무너지면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 법조계가 위선(僞善)으로 넘친다면 법과 사회의 정의는 설 곳이 없다.
법원과 검찰은 난감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지휘부 회의를 열어 신뢰 회복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때 뿐이다. 신뢰 회복은 대책과 다짐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유사한 사고는 꼬리를 물 수 밖에 없다.
물론 모든 법관의 품위와 검사의 잘못된 수사 관행이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 정의로운 법 집행에 대해 고민하고, 정도를 지킨다면 전체 사법부와 검찰의 신뢰 회복의 기회도 생각보다 앞당겨지리라 생각된다.
법의 정의는 법전과 판.검사의 법률 지식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무엇이고, 죄는 무엇이며, 삶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적 사고도 요구된다. 여기에 작가적 소질까지 겸비돼야 더 훌륭한 재판과 수사를 할 수 있다.
최근 가슴을 뜨겁게 하는 몇 가지 판결이 눈길을 끈다. ‘죄는 밉지만,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는 수사.재판의 기본 원리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까지 강조한 보기드문 신선한 판결이다. 모든 판.검사들에게 음미를 권하고 싶다.
지난해 12월 진해시 한 여인숙에서 자살하려고 불을 질러 방화미수 혐의로 기소된 한 30대 남성 피고인에게 창원지법 문형배 부장판사는 기막힌 판결을 했다.
문 판사는 카드 빚(3천만원) 때문에 비관 자살하려 했던 피고인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에 2년을 선고하면서 삶의 가치를 되씹어 보라며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책까지 선물했다.
문 판사는 피고인에게 “자살이란 말을 10번 반복해 말해 보라”고도 했다. 그는 “‘자살자살자살‘을 되풀이하다 보면 ‘살자’로 들리지 않으냐”며 “죽어야 할 이유를 살아야 할 이유로 바꿔 생각해 새롭게 살아가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문 판사는 지금까지 재판 과정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과 기회를 주면 잘 살아갈 것같은 피고인들에게 10권의 책을 선물했다고 한다. 삶에 대한 용기를 주기 위해서였다.
또,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런 판결문도 있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 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 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핀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 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한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아름다운 판결’ 때문에 계약 잘못으로 임대 아파트에서 쫓겨날 뻔한 홀로 사는 70대 노인이 희망을 되찾게 됐다. 판결문을 시 처럼, 수필 같이 쓴 사람은 대전고법 박철 부장판사다. 그는 평소에도 설득력 있는 판결문을 쓰기 위해 정서적인 표현을 많이 쓰는 판사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0월 이 판결문을 쓴 그는 “정의라는 원리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없이 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고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가 하면 후원자의 간절한 호소를 받아들여 20대 피고인에게 새 삶을 찾게 해 준 판사도 있다. 지난 1월 제주지법 김상환 부장판사는 누범(절도) 기간에 또 금품을 훔친 젊은이에게 실형을 선고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후원자가 나타나 “사람 만들어 보곘다“며 선처를 호소하자 ”이레적인 사정 아래서라면 나이 어린 피고인에게 열심히 살아갈 기회를 주겠다”며 실형 대신에 벌금형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차가운 머리 뿐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하는 법의 해석과 집행, 지금법원과 검찰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과제다.
뜨거운 가슴으로 판결문을 쓰는 법관과 이성을 잃지 않은 검사의 마음 역시 아름다울 것이다. 더 많은 ‘아름다운 판결’과 더 많은 ‘아름다운 판사와 검사’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국민의 사법부와 검찰이 될 수 있다.

김   광    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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