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영웅 이야기를 남겼다. 대형 서사시라든지 건국신화에는 위대한 영웅적 특성을 지닌 주인공이 등장하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엮어낸다. 때로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동원하여 영웅을 창안해냈다 하더라도 그들의 업적은 뛰어난 것이 틀림없다.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백성의 절실한 꿈이 거기에 베어들었기 때문이다.
“영웅 숭배는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현재에도 존재한다. 미래에도 영원히 전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할 것이다.”(칼라일) 영웅 숭배는 유익하다. 그것은 우리에게 이상과 행동을 자극하고, 인간성을 일상생활의 흔한 평범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모범을 대중에게 보여준다. 영웅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모습은 밝은 색깔의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기와 무력으로만 피어나지 못한다. 인간애 없이 어떻게 영웅일 수 있을까? 힘으로써 이긴 사람이 아니고 정신으로 승리한 사람이 진정한 영웅일 것이다.
영웅 이야기는 그가 온갖 시련과 역경에 맞서서 악전고투하는 과정에 이르러 흥미의 절정을 이룬다. 영웅은 초인적인 의지와 추진력으로 고난을 극복한다. 그는 주민에게 안락한 삶을 주는 것이 아니고, 고통을 이기는 의지를 보이면서 장미빛 미래를 제시한다. 영웅의 또 하나 위대한 점은 일찍이 한 번도 절망해 보지 않는 데에 있다.
요즘 이런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주몽”이 대단한 인기 속에 방영되고 있다. “이민족에게 고통 받는 유민들을 구출하고, 옛 조선의 국토를 회복하여 강력한 새 나라를 세운다.”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영웅적인 주제가 인기의 가장 큰 요인이다. 그리고 잘 생긴 남자 주인공도 빼 놓을 수 없다. 거기다가 소프트한 현대극의 요소인 미녀들이 등장하여 애정 행각까지 알맞게 배치되면서 흥미를 더하고 있다.
옛날 이야기에 오늘의 현실을 복합시킨 이 사극은 역사의 역동적 순간들을 현대적 시각으로 풀이하면서 그 중심에 영웅적 이미지를 설정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부하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 억압받는 유민들에 대한 연민과 구출의 노력은 나날의 고된 임무에 짓눌려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주인공이 유민들을 구출하고, 추격해 오는 대소왕자를 따돌려 강을 건너는 장면에서는 구약성격의 엑소더스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의 앞에 닥치는 고난의 길은 신녀들의 암시와 예언으로 더욱 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고난을 헤쳐 나아가는 길은 거스를 수 없는 하늘의 뜻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영웅의 분질은 세상을 무력으로 정복하는 데 있지 않다. 야철대장이 강철검을 만들었을 때도 주몽은 심각하고 근엄한 태도로 입을 연다. “전투에 이기려면 무기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 마음이 되어 고난을 극복하는 정신력은 더욱 중요하다.” 또한 동족 간에 피를 흘리지 않고 통합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 선언하고 그것을 추진한다. 문득 분단의 현실이 가슴을 때린다.
아직 드라마는 끝나지 않았다. 순간 최고 시청률이 65%에 육박한다는 인기에 스스로 구속되어 무리하게 이야기를 연장시킨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 영웅 이야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역사의 현장을 대리 체험하면서 힘겨운 나날에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근년에 이웃 나라에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한다는 내용이 알려졌다. 견강부회의 어거지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나 자학이나 분노로 사태가 해결되는 일은 없다. 영웅 이야기는 역사 왜곡의 음모에 대해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처하도록 하는 구실도 하고 있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