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통일부 관계자들은 노르웨이 출신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의 개념을 열심히 토론하고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갈퉁은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라서 이러한 보도는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그는 작년 5월 한국을 방문해 가진 강연에서도 미국은 평화의 개념이 없는 나라이며, 미 제국주의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0년대에 들면서 미국이라는 제국이 25년 안에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 시기가 5년 앞당겨졌다고도 했다. 미국이 존재하는 것은 오직 '팍스 아메리카', 즉 미국 우월주의라고도 말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서도 졌으며 한국전쟁도 이기지 못해서, 자존심의 상처를 받았다고도 했다.
갈퉁은 평화의 개념을 논하면서도, 단지 전쟁이 없다는 의미의 평화를 ‘소극적 평화’라고 하고, 이에 반해 행복과 복지와 번영이 보장되어 있다는 의미의 평화를 ‘적극적 평화’라고 하였다. 적극적 의미에서 평화란 사회정의의 실현이며, 인권의 옹호와 확대이며, 고통과 궁핍으로부터의 해방과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폭력에는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해오는 퍼스널하고 직접적이고 현재적(顯在的)인 폭력이 있는가 하면, 간접적이고 구조적이고 잠재적인 폭력이 있다고 하면서 전자의 예로는 전쟁, 테러, 린치, 폭행 등을 들고 후자의 예로는 나쁜 사회제도, 잘못된 관습, 불평등한 경제, 나쁜 정치나 법률, 환경파괴와 오염, 나쁜 개발 따위를 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갈퉁의 대(對)한반도 정책에 대한 견해는 사뭇 신선하다. 그는 미국은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국가다, 한반도에서도 미국은 못 다 이룬 승리를 얻고 싶어 한다고 했다. 한국전쟁에서 승리를 얻지 못함으로써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미국이 오늘날 한반도의 모든 조건들을 제 손 위에 놓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남북의 통일과 관련해서 그는 한반도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의 통일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이라며 한국에서는 통일의 개념이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통일은 하나의 정부가 세워지는 것인데 그런 통일을 이루려다 보니 지난 세월 동안 남북은 서로 망하기만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간 통일을 이루려고 할 때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민족의 통일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요한 갈퉁은 1930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났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프린스턴대학의 교수를 거쳐 현재 유럽평화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세계평화연구소, 세계평화학회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에 관심이 높다. 그는 남북 사이의 철도와 도로 복원 공사를 우리보다 더 벅찬 감동으로 지켜보았으며, 70년대 이후 남북한을 수십 회 방문하면서 ‘평화의 수단’에 의한 남북한 통일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또 남북한 통일은 한, 중, 일 동아시아 3개국 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한은 몰락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미국 패권에 의존해서 남북 분단을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도 지난 달 정례 브리핑에서 화해와 협력의 진전에 부응하기 위해 학교 및 사회 통일교육에 평화교육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 장관은 이를 위해 우선 통일부 교육부 평화교육실시단체 등 유관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추진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장관은 신년사에서도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평화이고 이를 위해서는 북핵문제뿐 아니라 북한 빈곤문제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며 대북 지원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갈퉁과 맥이 닿는 통일부 장관의 통일에 관한 생각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