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칼럼] ‘말’과 “나쁜 대통령”
[김광호 칼럼] ‘말’과 “나쁜 대통령”
  • 김광호 대기자
  • 승인 2007.0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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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짧은 낱말이면서도 아주 많은 뜻을 지니고 있다.
국어사전에 담긴 말의 뜻은 다른 말을 압도한다. 말은 사람의 사상과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말과 관련한 경구는 대부분 속담이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에서부터 ‘말 같지 않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등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속담이 많다.
그렇다. 말은 곧 행복이요, 문화다. 말이 없다면 삶도, 민족 문화의 발전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잘못 뱉은 한 마디 말 때문에 오해를 사고 낭패를 본다. 잘 나가던 사람이 한 순간의 말 실수로 인해 명예와 지위가 땅에 떨어지기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품위 있는 말은 사람을 고귀하게 만들고, 신뢰를 두텁게 하며, 주변을 훈훈하게 한다. 환경을 훼손하는 것은 공해만이 아니다. 정화되지 않은 말의 난무도 품위없는 사회를 만든다.
특히 지도층일 수록 정화되고 절제된 말이 필요하다. 지도층의 적절한 언어 사용은 정책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고 사회를 순화시킨다.
역시 말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지도자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로 시작된 저품격의 말들로 인해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대통령이라 해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은 과거사 정리 관련법 추진과 부동산 정책 등 각종 무리한 정책과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소원해진 대미정책 등 국내외 정책 혼선에도 원인이 있다.
그러나 하지 않아도 될 말, 말 같지 않은 말을 쏟아내 인기를 잃은 측면이 더 많다. 감성과 감정적인 말들로 대통령으로서의 품위를 스스로 추락시켰다.
그러다 보니 공감이 가는 객관적이고 그럴싸한 정책을 발표해도 ‘노 대통령이 하는 일은 다 싫다’는 등식이 성립된 형국이 됐다. 일부 국민과 야당, 중앙 언론까지 노 대통령의 말과 정책에 상당 부분 반대를 위한 반대로 대응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사실 노 대통령의 '대통령 4년 연임 개헌' 제안이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유도 평소 정갈스럽지 못하고, 왔다 갔다 하는 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서 개헌은 대통령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개헌 얘기를 끄집어 내 쟁점화하고, 추진해 나가기엔 적절치 않다. 되지도 않을 일이다”.
물론 그 후의 정치적 상황이 바뀌었다고 판단했는지 몰라도, 불과 1년만에 그 말을 완전히 뒤집는 말을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 만약 노 대통령이 평소 말을 아껴 할 말만 하고, 책임질 말만 했다면 지금처럼 말이 안 먹히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개헌문제에 대해선 야당이나 일부 언론도 그렇게 극성스럽게 반대할 입장이 못 된다. 그들 역시 1~2년 전만 해도, 지난해 말 또는 올해 초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했었다.
분명히 그런 말을 한 야당 지도자들이나, 일부 언론이 며칠 전 노 대통령이 막상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나 같이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은 시기가 적절치 않다. 다음 정부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억지 논리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인 이명박 후보는 “대선을 앞두고 개헌이라니”라는 반응을 보였고, 박근혜 후보는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고 어설픈 발언을 했다.
박 후보도 그 동안 자주 개헌을 말해 왔다. 그런 입장에서 “나쁜 대통령”에, 국민까지 들먹인 것은 좀 심했다. 박 후보도 노 대통령처럼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박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3선 개헌에 이어 유신으로 장기 집권한 아버지의 잘못을 모를리 없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가 노 대통령에게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하다니, 말의 선택에 문제가 있었다면 모를까, 쉽게 그런 말을 해선 안된다고 본다.
자기가 한 말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온다. 아닌게 아니라 청와대가 즉각 “3선 개헌을 한 박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이다”라고 맞받아쳤다. 할 말 안 할 말을 가렸다면, 이런 눈꼴사나운 맞불은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순화된 말을 쓰라면서 어른들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 더욱이 대통령과 대통령이 되려는 지도자들의 말이 이 모양이니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말로 인해 손해를 본 노 대통령의 사례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국가정책에 불신을 자초할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말은 노 대통령 한 사람으로 끝나야 한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가장 명심할 일은 말 조심이다. 항상 말을 가려서 하고, 감정적이고 직설적인 말이 아닌 이성적이고 우회적이며 품격있는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대통령 본인도, 국민도 편해지고, 추진하는 나라살림 정책도 순조로워 질 수 있다.

김   광   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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