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상대빈곤의 아픔
[데스크 칼럼] 상대빈곤의 아픔
  • 김용덕
  • 승인 2007.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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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미덕(?)

저축과 소비, 이 둘 가운데 어떤 게 미덕이냐를 따지기가 요즘 한창이다. 저축은 개인이건 법인이건 미래를 담보하는 가장 훌륭한 재원이다. 저축은 투자의 제2자산이다. 이런 점에서 저축은 분명 미덕이다. 이를 나무랄 그 누구도 없다.

그런데 요즘 여기에 시비를 건다. 그 시비의 초점은 다음과 같다.

지갑을 모두 잠근다면 생산만 있고 소비는 없다는 것이다. 돈 쓸 사람이 없는데 생산만 하면 뭐하느냐는 것이다. 공장이 문 닫고 일자리가 없어지면 세금결손이 생기고 이는 결국 경제파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소비가 가장 큰 미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경제는 어떤 게 미덕일까. 이는 현실문제가 아닌 이해 수준의 문제다.

현실로 가보자. 먹고 살기가 빡빡한데 저축할 돈은 있나. 그렇다고 쓸 돈은 있는가. 아니다. 자신을 중산층 이하로 내리 깎아내릴 수밖에 없는 우리네 모습이 그렇다.

정삼각형 구조의 자본구조, 그 밑바탕을 형성하고 있는 중산층이하 사람들 생각의 정점은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 태생이 바로 현 정부라는데 이견이 없다.

정부의 자기중심축 사고, 가진 자의 눈먼 돈, 권력과 비리속에서 잉태한 대한민국 현 경제구조의 모순은 지금 쥐꼬리만한 대다수의 국민들의 지갑을 열라는데 있다. 그게 미덕이라면서 말이다.

성장의 과실 누가 맛보나

정부가 4일 내놓은 현 경제상황 평가 및 경제전망은 ‘거시지표와 체감경기의 괴리현상’이라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제주지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행제주본부와 중소기업중앙회제주지회가 내놓은 ‘2007 제주지역 경기전망’은 지표상 ‘흐린 후 갬’이지만 체감경기는 ‘악순환 일로’다.

제주지역은 소비시장이다. 국내외경기와 맞물려 돌아간다. 국내경기가 악화되면 제주경기 역시 직격탄이다.

그 중심선상에 건설업이 있다. 고용창출이 많은 건설업이 부진을 면치 못한다는 전망은 이미 고용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는 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일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고용창출이 가능하겠는가.

제주도가 전면으로 내세운 IT.BT 등 4+1산업의 중점 육성과 한국은행제주본부의 향후 제주경기 전망에서의 지원강화는 언뜻 당연한 논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부가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고용증가가 많지 않은 정보기술 분야의 중점투자는 지금의 고용시장을 얼어붙게 한다. 외관상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같은 현실과 전망속에 서민들의 허리는 더욱 가늘어 지고 있는 것이다.

양호한 실물경제로 자리잡았던 기업구조가 가계의 실질 구매력과 기업의 수익성 증대로 연결되지 못한 채 ‘빛 좋은 개살구’로만 자리잡았다. 국민들은 원유 등 원자재 값의 급등과 달리 이를 따라 잡지 못하는 정보기술 수출의 한계로 결국 성장의 과실을 전혀 맛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 나름대로 사는 세상

가계와 기업의 양극화는 이미 고질상태다. 이미 근로기준법과 최저생계비법이 정한 최저한도로로 먹고 입고 살지 못하는 가난이 지천이다. 이들 절대빈곤자의 수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문제는 자신보다 잘사는 사람과 비겨 느끼는 상대빈곤자들의 외침이 격해 있다는 점이다.

남이야 금송아지를 갖고 있건 말건 내 나름대로 사는 사람은 가난해도 상대빈곤을 느끼지 않는 행복한 사람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현 생활에서의 이들의 삶은 이미 고통의 한계를 넘어선 자들이다. 극빈층이다. 이들에게 사치는 남의 일이다. 이들에게 외식은 세상 넘어 일이다. 이들의 덕목은 단지 사는 일이다. 그리스 철학 디오게네스의 ‘누더기틈의 볕살’처럼 말이다.

반면 남이 떡이 더 커보이게 느끼는 남 나름대로 살고픈 이들의 상대빈곤이 문제다. 이들의 외침이 지금 우리네 현실이다. 이게 더 커가면서 양극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불안과 불만 응어리의 중심체다. 갈등과 분규의 씨앗이기도 하다. 남 나름대로 살고픈 희망이 꺾이고 있기 때문이다.

“적당히 가난하게 사는 방법이야 말로 현대에 권하고픈 미덕”이라는 원로의 가르침이 이들에게는 어떻게 투영될지 모를 일이다. 이미 세상은 제갈데로 가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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