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문부 전 제주대 총장은 ]
▲1935년생, 제주시 애월읍 출신, 서울대 법과대 졸
▲일본 세이게이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제주대 법학과 전임강사ㆍ교수 同 사회과학대학장.교무처장
同행정대학원장, 제주도교육위원, 제주지방자치학회장, 제주대 총장 역임
▲저서 ‘한국과 일본의 예산과정’(일어판)등 다수.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우니까 모두 경제우선 정책을 들고 나오지만, 진정 대통령이 되려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철학을 지녀야지요. 국민들도 그런 가치관으로 대통령을 선택해야 합니다” 조문부 전 제주대학교 총장(71ㆍ정치학 박사)이 대통령 선거가 있는 정해년(丁亥年) 벽두에 던지는 화두는 ‘철학’이다. 그는 정치 상황이 어지럽고 세상이 어수선한 것은 국가 지도자들의 철학 부재 때문이라고 했다. 사익(私益)을 위한 철학만 있고, 공익(公益)을 위한 철학이 없다는 게 원로 학자의 지론이다. 5년 전 총장직을 마지막으로 37년 동안 몸담았던 제주대를 떠나 지금은 명예교수로, 제주시노인대학장으로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원로 학자를 만나 세상사와 새해 덕담과 소망을 들었다.
-지난해에는 국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날이 많았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조직의 지도층과 사회 지도층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전통과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하지 못한 탓입니다.
미국은 존 듀이의 실용주의 철학에 청교도 정신이라는 종교의 역사(전통)가 접목됐기 때문에 정치겙姸쫨사회겧???발전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그 게 없었습니다.
일본도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을 중시했습니다. 전통위에 교육(규범)을 세운 것이지요. 처음에는 유교와 주자학에 서양기술을 접목시키려다가 결국 그들의 자연사상을 토대로 국학사상을 확립한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인 사상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존 듀이의 교육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결국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게 된 것도 전통적인 가치관이 없이 새로운 가치관만 중시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다 보니 돈이 최고이고, 돈을 벌기 위해 탈법이 저질러지고, 불법 행위를 해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사고가 만연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전통 교육이 중시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도층이 어떤 자세를 지녀야 어지러운 세상이 제대로 잡힐까요.
“영어와 컴퓨터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되는 게 더 중요해요. 대학의 캠퍼스도 철학 등 교양서적을 읽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연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철학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생활 가치가 무의미해질 수 있어요.
국어는 국민의 생활 정신과 철학이 담긴 국민 교과서예요. 국어과를 폐지하려는 대학도 있다니 기가 막힐 일이지요. 대학과 사회가 이런 식으로 간다면 국가와 민족의 미래는 없습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은 국민통합과 사회통합이 안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공윤리가 부족한 때문이지요. 의사든, 변호사든, 교수든 물질과 관계없이 양심적으로 공공윤리 차원에서 직분을 다해야 합니다. 전통 윤리 교육만 잘 돼도 사회통합은 이뤄질 수 있을 거예요.
-정치인들은 개혁과 화합을 쉽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 없습니다. 올바른 개혁은 어떤 것이고, 화합을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보수든, 진보든 합리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개혁도 합리적이라야 해요. 진보를 개혁으로 보는 것은 사회주의적 개혁이지요. 경제도 생산해서 분배로 가야합니다.
저는 진보, 보수를 떠나서 정치.경제적 합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화합도 모두 합리주의적인 방향으로 나가려고 할 때 발전 지향적인 화합이 될 거예요. 경제적 합리는 말하면서 정치적 합리주의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정치인들의 정치철학과 법철학이 약한 때문이지요. 결국 분열과 갈등이 지속될 수 밖에 없지요.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개혁도, 화합도 이뤄집니다.”
-총장님의 생활신조는 어떤 것입니까.
“공익을 위해 사익이 희생될 망정, 사익을 위해 공익이 희생돼선 안된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사적인 입장에서는 공정을, 공적인 입장에서는 엄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총장 시절 이것을 실천하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다행스런 일은 다른 총장들 재임때와 달리 제가 있을 때 세상을 떠난 교수가 한 명도 없습니다. 보람이라면 보람이지요. 종교적 기도도 많이 했지요. 심지어 고란사와 법주사까지 찾아가 교수들의 무탈을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들도 이런 사실은 몰랐을 거예요.”
-제주지역도 이런 저런 일로 꽤나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주민 반발이 심합니다.
“펑화의 섬, 그리고 안보와 경제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서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부나 반대하는 도민이나 대안이 없는 것 같아요. 건설하려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서로 일방적 주장뿐이지요. 역시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도민적 합의겠지요. 논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 결정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인물 빈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재가 많아야 지역발전도 앞당겨지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되지 않을까요.
“국내외 제주출신 인재는 적은 편이 아니예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게 문제지요. 제주도가 인재양성팀을 구성해 국내외 석학 등 많은 인재들을 제주발전에 동참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참여할 수 있는 동기만 주어진다면 대부분 기꺼이 참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주특별자치도의 미래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시행 초기 단계여서 그런지 말들이 많습니다만.
“중앙정치로부터 소외돼선 안됩니다. ‘제주도 스스로 잘 살아보겠다는 게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특히 제주의 특성에 맞는 정책적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이를테면, 제주대의 줄기세포 연구라든가, 조류독감 예방.치료약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고 봐요.
이런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만 이뤄진다면 분명 세계가 깜짝 놀랄 의약품이 개발되리라 생각해요.
국제관광과 1차산업도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상품의 국경없는 교류는 시기만 문제일 뿐, 머지않아 현실이 될 겁니다. 이런 문제에 대비만 잘 한다면 제주의 미래는 밝습니다.”
-끝으로, 새해를 맞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세계에 눈을 돌려 독창력을 키워나가야 해요. 언젠가, 제주대 산업디자인과 출신이 삼성에 입사해 휴대폰의 디자인을 바꾸는 큰 일을 하는 젊은이를 본 적이 있어요.
어디서 공부하든, 열심히 하면 큰 일을 해 낼수 있습니다. 독창력을 키우는 대학생이 됐으면 합니다”.
조 전 총장은 지난 해 협심증으로 혈관 수술을 했다고 했다. 교수 시절 연구실에서 보통 2박3일 간, 많을 때는 3박4일 간 밤을 지샌 데다, 담배를 즐겨 피운 탓(하루 3갑 정도)이라며 특유의 순수함 넘치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도 그는 담배를 멀리하지 못하겠다는 듯, 기자와의 대담 시간에 몇 차례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여전히 건강에는 자신이 넘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