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술 망년회
[세평시평] 술 망년회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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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돈 써 가면서 제 술 안 먹어 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 인정으로 주고 인정(人情)으로 받는 거라, 주고받는 사람이 함께 인정(人情)에 희생이 된다. 흥으로 얘기하고 흥으로 듣기 때문에 얘기하고 듣는 사람이 모두 흥 때문에 진위를 개의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정(人情)을 마시고,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흥에 취하는 것”이다” 조지훈시인의 술의 예찬 “술은 인정이라” 이다.
술은 인간이 발명한 최상의 물질이다. 술꾼들에게 『왜 술을 먹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글쎄…』다.
「술 먹는 사람치고 핑계 없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막상 「술자리」가 벌어진 이유가 뭔지 물으면 대답이 궁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진정한 술꾼은 목표를 정해 놓고 마시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잔의 술이 목젖을 타고 내려갈 때의 짜릿한 감촉, 취기가 올라 알딸딸해지며 세상에 무서운 것도 없고 부러운 것도 없는 듯한 만족감, 흐릿한 술집 照明(조명) 아래서 어수선하게 이어지는 말의 향연, 어제도 봤고 오늘도 보면서도 지겹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 친구·직장동료와의 만남 등 「술자리가 주는 분위기」 자체가 목표인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
사람들은 술을 왜 마시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취한다」는 술의 본질이 飮酒(음주)의 가장 큰 이유라는 데 異意가 있을 수 없다.
술은 음주자가 원하는 감정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작용의 유연성」을 지녔다.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마약류 중 필로폰은 아주 고조된 감정을 촉발하고 아편은 한없이 나른하게 해 世上 萬事를 잊게 하는 효과를 지녔다. 이에 비해 술은 마시는 사람이 원하는 감정의 방향으로 자유롭게 작용한다. 즐겁기 위해서 마실 때는 즐거운 마음을, 슬픈 연민의 情이 필요할 때는 그런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 준다.
술이 갖는 갖가지 효능은 사람들을 기쁘게, 슬프게, 흥분되게, 관대하게, 대담하게, 난폭하게 하는 등 오만 가지 변신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효능으로 인해 술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 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酒歷과과 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酒格은 높아지지 않는다. 酒道에도 엄연히 段이 있다는 말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분주한 움직임이 거리도처에서 감지되는 요즈음 우리 주변에선 술이 넘쳐 흐른다.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한 룸살롱에서, 고기 굽는 음식점에서, 포장마차에서 술병은 뒹굴고 있다. 유흥가부터 주택가 골목까지 술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곳은 별로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 밤거리처럼 술의 觸手(촉수)가 광범위하게 더듬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하지만 술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교훈도 적지 않다. 약간의 취기에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밤거리를 휘청거리며 누비고 각종 사고를 일으키다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게 우리의 풍토다. 그래서 오늘날 전쟁, 흉년, 전염병을 다 합쳐도 술의 해악에 이르지 못한다고 한다.
유난히 어려웠던 금년한해이었기에 이 기억들을 지우고 새해의 각오를 다지려는 망년회(忘年會)가 나쁜 일은 결코 아니다. 아직 남은 모임들은 술로 인해 몸도 상하고 벗의 마음도 상하게 하는 술 권하는 술 망년회를 지양하고 불신과 단절의 벽을 허물고 친지에게,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자리이고 다가오는 내일을 재창조하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이   광   래 (제주관광대 사회복지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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