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에 거는 대학합격 현수막 없애자"
'경축 서울대 X명, 고려대 X명, 연세대 X명, 의대 X명 합격.' '경찰대 9명 합격(광주·전남 최다).'
광주지역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학교를 사설입시 학원화'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주장해 광주시교육청과 각 학교 측에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광주인권운동센터와 참교육학부모회광주지부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특정대학 합격현수막 설치를 반대하는 모임(이하 현수막 반대모임)'은 최근 성명을 내고 "광주시내 상당수 고교가 소위 명문대로 불리는 대학들과 특정과에 합격한 학생들의 이름을 현수막에 적어 광고하고 있는 것은 공교육을 포기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광주시교육청이 교문에 현수막을 붙인 학교에 이를 걷어내도록 지시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수막 반대모임은 "교육이념과 상관없이 영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입시학원에서야 현수막과 전광판 등을 내세워 광고를 한다고 하지만,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마저 이 같은 현수막을 내건다는 것은 학교가 교육이념을 포기하고 입시학원화 하겠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행위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을 가지 않고 현장에서 열심히 기술을 익히거나 직업전선에 뛰어든 상당수 학생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학벌이나 점수에 상관없이 특기와 적성에 맞게 과를 선택한 다른 학생들에게도 상대적 패배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광주뿐만 아니라 거의 전국적인 현상일 게다.
"축-국무총리상 수상-가족 일동". "×××아들 사법고시 합격- 친척일동" . "서기관 승진- ××읍 향우회 회원일동"
제주도내에서도 광주와 비슷한 현수막이 신문지상 광고를 통해 오르내린다. 천을 둘러 밖에 거는 현수막은 아니다. 신문 광고 현수막으로 축하 광고 가운데는 큼지막한 사진이 어김없이 실린다. 그 아래에는 부모가 누구며 동생 심지어 외삼촌까지 거명된다.
승진하거나 시험에 합격하고 당선되거나 취임하는 등 경사가 생기면 광주에서 일류대학에 입학한 것처럼 어김없이 지방 신문에 광고 현수막을 내거는 기현상이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자리잡고 있다.
오로지 제주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현상이다. 비싼 신문광고 값을 지불하면서까지 자기자식 자랑, 자기나 친척 (소속 집단) 자랑하는 지역은 전국에서 제주 말고는 없다.
한번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가까운 친척의 부친에게 전화로 축하한다고 했더니 신문에 광고를 내 이름으로 내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광고요금은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게다. 명의만 빌려달란 것이어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부모, 자식은 물론 형제 이름으로도 축하광고를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하며 자신의 잘남을 우쭐거리거나 겉에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이웃과 함께 조용히 녹아 살던 제주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 모습은 어딜 갔는가.
합격, 당선, 취임, 승진 광고 현수막의 그늘엔 아슬아슬하게 낙방하고, 낙선되고, 장(長)에 취임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쉬움과 한숨이 촘촘하게 서려있지나 않을까.
세상을 조금만 깊이 있는 눈과 머리로 바라다보면, 우린 요즘 너무 내 자신, 내 가족, 내 주변 동류집단에게만 취해 있는 것은 아닌지.
현수막 광고 요금을 내고 축하연 배푸는 그 돈으로 차라리 불우이웃 성금 내기 운동이라도 벌이면 어떨까. 승진, 합격, 취임, 당선, 수상을 기념하고 추억케 하는 계기로 남을 돕는다면 그 경사는 크리스마스 색깔처럼 더욱 의미를 더할 것 같다. (신문사 광고 수입이 줄어들어 필자가 경영진으로부터 말먹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