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간들을 살해하였는가. 그 화려한 황금색 시간들을. 믿음의 한 시간 한 시간을.”(트리스) 우리는 새해가 시작되는 시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아울러 부푼 기대감에 싸인 채 그 화려한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가 기다릴 수 있는 촌각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물결은 거세었다.
한 가지 일이 눈에 띄자마자 그것은 곧 떠내려가고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차지하여 또다시 떠내려갔다. 우리는 어쩌면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듯이 무심코 그 시간을 흘려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제 한 해가 저무는 시간에 와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으면서 나는 크게 놀라는 것이다. 쏟아진 찻잔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 모든 것이 조그맣고 생소하게 보이는 것이다.
대체 나는 무엇을 꿈꾸고 어떤 일에 정렬을 쏟으며 한 해를 보냈던 것일까? 지금 한 아름의 추억을 간직한 채 일몰의 희미한 빛은 낯선 모습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희미한 빛 속에 퇴색해 가는 추억의 그림자를 우리는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혹시 허물자국이 얼룩져 있더라도, 그것들은 우리가 기울이는 정성과 고뇌의 손길로 다시 분홍빛을 띄어 소생하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육체의 질병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쾌락이 있다. 그러나 영혼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고뇌가 있다.”(셰익스피어) 우리의 고뇌가 설령 고문을 당하듯이 아프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회피할 수가 없다.
핵무기 문제, 자유무역 협정, 회담개최 등등 살벌한 얼음판에 서있는 위기의식을 떨치지 못한 채 우리는 아침을 맞고 저녁을 보냈다. 평화의 터전, 군사 기지 등의 어휘에서 우리는 갈팡질팡하였다.
진실은 내가 걷는 길을 자꾸만 비껴 지나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 감당하기 힘든 사교육비, 거기에 더하여 이익 집단 간의 극단적 대립과 갈등을 우리는 어떻게 소화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의 고뇌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아름다운 자연을 더럽히고 손상시키는 일에 공범자였다. 지진이나 폭풍이 허물어 버린 건축물보다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이 파괴한 자연의 황량한 자태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만은 찰나적 쾌락주의와 결부되면서 마침내 생명 경시의 풍조를 조장하였다.
이 와중에서 우리는 머리띠를 두르고 팔을 휘두르며 고함을 지르는 일에 사뭇 익숙해져 갔다. 거기에는 이웃을 포용하는 어휘가 없었다. 증오와 저주, 질시와 파괴 등등이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는 주제가 되었다.
나와 너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무시하고, 너는 틀렸다는 착각이 우리를 옭아매어 풀어주지 않았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랑도 많다.
우리가 목소리를 합쳐 힘껏 외치는 구호 속에는 찬양과 격려, 일치와 동조가 분수처럼 샘솟기도 했음을 기억한다. 또한 고통의 이웃을 찾아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우리는 보아왔다.
그때 우리는 신선한 생명의 꽃동산에 진실이 피어오르는 감동을 체험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체험을 소중히 가다듬고 손질하여 더욱 자라나도록 북돋아야 할 것이다.
이제 한 해가 저무는 시간에 와 있다. 그것은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맑은 샘물이 언제나 신선한 생명력을 지니듯이, 귀중한 시간 또한 우리의 얼룩진 육신을 정화하며 싣고 가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간은 진리를 발견한다”(세네카)는 말을 들으며 새로이 옷깃을 여미게 된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