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끈 사건의 명판결문은 명작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동을 준다. 명판결과 명판결문을 쓸 수 있는 법관은 높은 법률지식 뿐아니라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의 능력까지도 겸비하고 있다.
역시 ‘명재판’ 하면 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다. 한 간난 아이를 데리고 와 서로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은 기가 막힌 판결을 내렸다. 그는 신하에게 칼로 아이를 둘로 쪼개 반씩 나눠 주라고 했다. 이 때 진짜 어머니는 “아이를 죽이지 말고 저 여자에게 주라”고 애원했다. 솔로몬은 아이를 죽이지 말라는 여인에게 아이를 줬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명판결의 전설적 얘기여서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뛰어난 벌률 지식만으로 명판결은 나오지 않는다. 지혜와 깊은 통찰력이 겸비돼야만 솔로몬과 같은 명판결을 할 수 있다. 유명한 ‘솔로몬의 지혜’라는 말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솔로몬은 지식뿐아니라 지혜로 선과 악을 분명히 가려 선한 사람에게는 행복을,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줬다.
우리에게도 솔로몬과 같은 명재판관이 필요하다. 물론 명판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판결도 적잖다. 이를테면, ‘복지는 교육이다’는 명판결이 있는 반면에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희화적인 판결이 있다.
하긴 명판결인지, 아닌지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심과 2심 판결이 상반될 때 1심 판결을 명판결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2심 판결을 명판결로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기자가 보기에 지난 6월28일 제주지법 행정부가 내린 한국공항의 제주산 먹는 샘물 도외 반출 제한 조치의 ‘적법’ 판결은 명판결일 뿐아니라 명판결문이다.
재판부는 한국공항이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보존자원(지하수) 반출허가처분 중 부관취소 사건 선고 공판에서 “제주에서의 지하수는 육지에서의 지하수보다 보호의 필요성이 매우 절실하다”며 “도외 반출을 계열사로 제한한 제주도의 반출허가 처분 중 부관은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당시 기자는 이 기사를 쓰면서 ‘명쾌한 결론’이라는 말을 덧붙였었다. 공익, 즉 지하수 보호와 지하수 공공성의 원칙이 사익에 우선한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많은 도민들도 이 판결에 크게 공감했다.
1심 재판부가 지적한 바 대로 제주의 지하수는 섬이라는 지역 특수성 때문에 제한적이다. 도민이면 누구나 고갈을 우려하는 수자원이다. 공공의 자원이고, 적절한 관리와 보전 없이는 고갈될 유일한 자원이다. 재판부가 이러한 도민들의 정서까지 고려하는 명판결을 한 것이다.
지하수의 공개념은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하고 있다. 사개념도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긴 하나 설득력이 약해지는 추세다. 이미 우리나라는 UN에 의해 리비아.모르코와 함께 물 부족 국가로 분류돼 있다. 물 부족에 시달릴 장래에 대비해서라도 무분별한 지하수 개발과 이용은 마땅히 규제돼야 한다.
일찍이 제주도가 이 문제에 완벽히 대비하지 못한 것은 큰 실책이다. 굳이 따지자면 당초 한국공항에 지하수 반출을 허가한 것이 문제였고, 스스로 공개념을 과신하며 먹는 샘물을 증산해 온 게 잘못이다. 한국공항과 물 문제로 법정싸움을 벌이게 된 원죄도 사실상 제주도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공항의 제주산 먹는 샘물 시판을 허용한 지난 15일 광주고법 제주부의 판결은 명판결인가, 아닌가.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 판결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다만, “한국공항이 당초 먹는 샘물을 국내 판매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은 당시 도민의 정서와 허가권자인 제주도 및 도의회와의 관계 등을 고려한 것으로, 이후 약속의 철회가 합리화될 만한 사정 변경이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든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재판부는 이후 도민의 정서가 달라졌고, 한국공항과 도 및 도의회와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보는 것같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도민의 정서는 제주의 지하수를 공개념으로 보고 있고, 제주도와의 관계도 바로 그 지하수 문제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사정변경은 민법상 계약(약속) 체결의 기초가 된 사정이 그 이후에 현저히 변경됐을 경우에 인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사정은 그대로이거나 오하려 더 악화됐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달라진(변경)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과문한 탓인지, 법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제주의 지하수는 공익이 우선이다. 미비한 법 조항(?)과 사익 배려의 판단이 아닌, ‘지하수는 더 보전해야 할 최후의 수자원’임에 손을 들어 준다면 명판결.명판결문이 될 것이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