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정평위(正平委)가 입을 열었다. 천주교 제주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제주도 군사기지 추진을 반대 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정평위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군사기지 건설은 ‘제주 평화의 섬’과 양립할 수 없다”고 전제, “정부는 이보다 먼저 ‘세계평화의 섬’ 선언에 담겨 있는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게끔 구체적인 계획부터 수립해야한다”고 촉구하였다. 그렇다면 제주‘세계 평화의 섬’선언에는 무엇이 어떻게 들어 있는가. 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은 서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특별법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그러면서 이 선언문은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사항을 실천할 것”임을 약속 하고 있다. 그 사항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제주도가 세계평화의 섬임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고 세계평화의 섬 구현을 위한 사업을 차질 없이 실행한다. 둘째,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통해 제주도를 국가 간 자유로운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한다. 셋째, 제주도에서 평화증진과 확산을 위한 평화 실천사업이 활발하게 성사되도록 지원한다. 선언문은 끝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계기로 세계평화 증진에 앞장설 것”임을 천명(闡明)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바로 이 내용을 지적하면서, 군사기지와 평화의 섬은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 섬 선언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하여 더욱 뒷받침되고 있다. 이 법 제155조는 ‘국가와 제주자치도는 세계평화의 섬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사업을 시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①국제평화와 협력관련 기구의 유치 ②국제협력에 관한 연구소 설립 ③국제평화와 협력관련 국제회의 유치 ④남북교류와 협력에 관한 사업 ⑤그 밖의 국제협력을 위한 사업.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국가는 이러한 사업시행을 위하여 필요한 행정적 · 재정적 지원을 하여야 한다(이 법 제155조 3항)’는 사실이다.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평화의 섬으로서 제주도는 ‘평화관련 국제회의와 기구겳П맑?등의 유치?설립’을 다른 그 무엇보다도 앞서 이행하여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평화의 섬’ 이념이 이처럼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은 아직도 이리저리 핑계만 대며 무책임 무소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종전 임명제 도지사 시절에는 대부분 제주도 출신이 아닌 자가 도백(道伯)자리를 맡았다. 그래서 그들은 중앙의 신임을 얻어 하루라도 빨리 상륙(영전)하고자, 지역의 실정과 정서에 관계없이 오로지 정부의 지시 명령에 충실하였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방자치 시대 아닌가. 주민직선으로 뽑힌 지자체(地自體) 최고위직의 지사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여야 한다. 그런 연후에 주민의 의사와 여론을 수렴하는 일이 순서이다. 그저 모호하게 ‘주민의 뜻’ 운운하면서 두루 뭉실 넘기려는 행위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힘이 있어야 인간의 맛이 나고, 지도자의 멋이 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면서 무원칙한 관용을 내세우는 것은 우리 도민들에게 무력감과 피해(被害)만을 줄 뿐이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