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행정력 낭비하는 ‘官制 대화’
[사설] 행정력 낭비하는 ‘官制 대화’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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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말은 ‘말로써 말 많은’ 연말이 될 것 같다. 제주도가 오는 연말까지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의 도정 성과를 홍보하고 잘못 알려진 정책을 바로 잡기 위해 각종 단체나 모임, 위원회 등과 무려 988회나 ‘홍보 대화’를 갖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종전이나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느냐”며 도정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민심을 돌리기 위한 사실상 ‘관제(官制) 대화’, ‘관제 홍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이는 김태환 지사의 ‘특명’이라 한다. 김 지사가 지난 1일 미국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성과를 각 실과별로 한 건씩 도민들에게 홍보할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 이에 따라 도 본청 각 실국은 물론, 산하 사업소와 행정시 각 실과별로 남은 기간 중 의무적으로 도민과 대화를 가져야 하는 데 대화횟수만 무려 988회로, 모든 실과가 하루 한 차례 이상은 반드시 도민과 대화를 해야만 채울 수 있는 숫자다. 한마디로 어이없는 일이다. 매일 모든 실과가 도민과의 대화에 ‘강제로’, ‘의무적’으로 동원된다는 것은 행정력 낭비라 할 수 밖에 없다. 공무원들에 의해 주도되는 일방적 ‘대화’가 과연 도민들에게 먹혀들겠느냐는 점도 문제지만, 인해전술식 여론몰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연말은 올해 각종 사업을 마무리하고 새해사업을 기획, 구상,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전 공무원을 일선 홍보현장에 투입함으로써 행정 공백을 초래할 우려도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대중매체가 발달된 시대에 공무원들이 일일이 주민과 단체를 직접 찾아다니며 도정을 홍보한다는 것이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에 맞는 처사일지도 한번 진지하게 따져봐야할 일이다. ‘억지 춘향’이란 말이 있다. 이렇듯 공무원들을 억지로 ‘동원’하여 밀어나가는 대화가 정녕 ‘서로 마주 대하며 이야기하는’ 진정한 대화가 될지도 의문이다. 대화는 한쪽만 밀어 부쳐서는 아무리 ‘홍보 대화’라도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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