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도민성과 강경 제주경찰
[데스크 칼럼] 도민성과 강경 제주경찰
  • 임창준
  • 승인 2006.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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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시위가 늘어나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전교조 시위가, 서울 시청 앞에서는 노사관계 로드맵 법제화 등을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시위가, 전국적으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시위가 각 도청앞에서 요즘 벌어졌다. 서울 도심은 교통이 마비되었고 광주시청과 충남도청의 시위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특히 민주노총의 과격한 시위는 대다수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시위문화는 원래 독재정권을 허물어뜨리고 민주주의를 곧추세운 아주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유를 넘어 방종의 수준으로 타락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된 데는 이해집단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제 몫을 챙기려는 욕구가 커진 반면, 정부는 이를 슬기롭게 해결할 능력을 배양하지 못한 탓이다. 정부는 이익집단을 상대로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법과 원칙보다는 섣부른 타협을 일삼아 왔다. 이런 과정에서 이익집단은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집단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정부가 결국 정책을 바꾼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법 집행도 정치논리에 좌우된다. 경찰은 불법시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다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면 그때 가서 떠밀리듯 단속에 나선다. 그렇다고 경찰만 탓하기도 어렵다. 경찰이 불법시위 주동자를 처벌하려 해도 정치적으로 무마되어 경찰의 위신만 떨어지기 일쑤이다. 또 눈치 없이 불법시위를 막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과잉 진압의 책임을 뒤집어쓰기 십상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는 되었지만 민주주의는 멀었다’는 국제적 조롱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 과격·폭력 시위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잘못된 시위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민간의 움직임도 꿈틀거려 다행이다.

 얼마전 전국적으로 한미 FTA 반대 시위가 있은 날 제주에서도 농민단체 회원 300여명이 도청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뒤늦게 경찰이 주동자 색출 한다며 소환장을 발부하고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으로 과잉처벌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하지만 이 시위때 일부 농민단체들이 제주도청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경찰은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감귤 컨테이너 박스를 던지거나 쏟아붇으며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공방은 있었지만 부상자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은 시위였다. 감귤을 내다 던졌다해도 감귤이 쇠뭉치도, 각목도 아니고, 무기는 더욱 아니였다.
제주경찰청장이 뒤늦게 이들 주동자들을 검거, 처벌하겠고 난리법석이다. 경찰청에서 떨어진 지시니 충실히 그대로 따르겠다는게다. 우스운 건 제주도의회 의장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이 1개 지방경찰청장에 대해 경찰청장 ‘님’ 이란 존칭어를 깍듯이 써가며 관대한 처분을 앙원하는 호소문도 보냈다.
의회 수장의 이런 행동은 도민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문제다.

 의장이 차라리 제주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과잉 대응하지 말라”고 경고라도 했어야 옳았다. 감귤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에서 우러나온 충정 때문이고, 더구나 지금이 민선· 민주화, 시민사회 시대 아닌가. 그 청장은 평소 ‘강경 경찰 운영‘으로 이번 인사에 치안감까지 승진했다. 해방이후 제주경찰사에 처음 일이다.
전국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한미 FTA 반대 시위 치곤 그래도 제주지역 시위가 가장 점잖았다.
감귤을 동원한 항의방식은 폭력적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 ‘퍼포먼스'적 성격이 크다는 점에서 이를 전국 차원과 동일하게 폭력시위로 규정해 사법처리 운운하는 것은 제주 경찰 스스로의 경직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울 등 다른지방에서라면 경범죄나 즉결심판에 회부될 정도인 사안을 제주 수사기관들은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등, 강공으로 나오는 바람에 도민들을 전과자로 양산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이 참에 제주경찰은 곱씹어 볼 일이다.

임   창   준 (편집부국장ㆍ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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