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만사', '민심은 천심'은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예나 지
금이나 이 말을 잘 따른 민족은 번영을 누렸고, 이 말을 외면한
민족은 혼란과 빈곤을 면치 못했다.
흔히 세종시대를 태평성대라고 한다. 세종의 성공적인 국가 경영
은 원래 성군의 자질을 타고 나기도 했지만, 사람을 잘 골라 등용
한데 있다. '인사가 만사'임을 가장 잘 따른 지도자였다.
성공한 인사인지, 아닌지는 민심을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청렴.결
백의 상장인 황희도 세종때 인물이다. 18년간 정승 자리에 앉았지
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었다. 민심을 거역하지 않은 그를 탓했
을 리 만무하다.
세종이 황희같은 인물들을 기용한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인사를 할 수 없는 것일까. 노 대통령은 취임 초 386세대 등 코드
인사로 논란을 자초했다. 재대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까지 청와대
와 정부 부처에 앉혔다. 이들 모두 일을 잘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 직원이 부인을 살해해 충격을 줬고, 엊그제는 사정
비서관의 가족이 제이유 그룹과 10억원대의 돈 거래를 해 수억원
이 가족에게 지급된 혐의가 검찰에 포착되기도 했다. 비서실 직원
은 대통령의 수족이나 다름없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도덕성에 문
제가 없어야 한다.
박정희,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은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들
이지만, 인사 문제에 관한 한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신경을 많이
썼다. 박 대통령은 한 번 장관이나 비서관에 기용한 사람은 믿고
일하도록 했다. 발탁은 신중을 기한 대신에 일은 능력에 맏기고
꾸준히 지켜보는 스타일이었다.
박 대통령의 경제개발 성공에는 남덕우와 박태준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남 총리는 수출 주도형 경제를 견인해 오늘의 수출강국의
기반을 다졌고, 박 총리는 포항제철을 세계적인 철강생산 기업으
로 만들었다.
전 대통령은 아예 경제를 몰랐다. 하지만 스스로 공부하며 경제에
눈을 떴다. 당시 그가 청와대에서 유능한 경제학자 김재익 경제수
석에게 경제 개인교습을 받은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다.
언로가 막힌 시대였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적어도 인
사 문제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정치권
과 학계에서 유능한 인물들을 발탁해 장관과 비서관 등 요직에
골고루 앉혔다.
무엇보다 두 대통령은 국민들의 상식에 크게 벗어나는 인사를 하
지 않았다. 때문에 억압과 제한된 자유 속에서도 민심은 그런대로
흐트러지지 않았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씨도 인사에 성공한 대통령은 아니다. 그
러나 국민의 여론은 그런대로 귀담아 들었다. 무슨 정책이든 국민
이 끝까지 반대하면 그만 둘 줄도 알았다.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다. 일단 리더십은 사람을
잘 쓰고, 민심만 잘 추스르면 저절로 주어진다. 장관 자리든, 비서
관 자리든 인재만 잘 기용하면 국가 조직이 비끗거리지 않고 돌
아가게 되고, 대통령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채워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의 말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은 것은 레임덕 현상이라기
보다 리더십 문제다. 실패한 인사와 이로 인해 등을 돌리는 민심
을 두려워하지 않은 탓이다.
노 대통령의 용기와 좋은 머리(지능)는 누구나 공감한다. 자존심
또한 누구못지 않게 강하다. 그러나 오기(傲氣)를 앞세운 용기와
지나친 자존심이 문제다.
특히 오기는 남의 말을 멀리하는 속성이 있다. 불필요한 오기와
자존심은 빨리 버리는 게 좋다. 그래야 국민들이 신뢰하게 되고,
지지도도 다시 올라가 레임덕도 덜해 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제라도 다수 국민과 여야 정치권이 공감하는 상식
적인 인사를 해야 한다. 최소한 인사 하나만 잘 해도 돌아선 민심
을 다시 꽉 붙잡을 수 있다.
요즘은 돌려막기에 보은 인사로 또 말썽이다. 헌재소장 인사도 해
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부 여론을 외면한 장관 인사로 정치권이
또 시끄럽다. "노 대통령의 부름을 받으려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낙마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식 코드 인사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인
사는 과거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개판(이전투구) 정치 때문에 경
제가 거덜난다는 말은 있었어도, 인사 때문에 경제가 잘 못 되고,
나라가 잘 못 되지않을까 걱정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올해 우리나라 수출액이 3000억 달러를 넘어설 만큼 거대 수출
국이 됐다. 하지만 사실상 반도체와 자동차가 수출을 주도했다.
수출 품목을 다양화하는 등의 대안 마련도 정부가 할 일이다.
국민들은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는 게 아
닐까 걱정하고 있다. 여론은 예방주사나 다름없다. 여론을 잘 수
렴한 정치를 해야 국민이 편하고, 경제기반도 튼튼해질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괜한 오기를 버리고 국민과 정치
권의 여론을 중시한 인사를 시도해야 한다. 그래야 국론 분열을
막고, 경제가 거꾸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랬다고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