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겉마음과 속마음
[세평시평] 겉마음과 속마음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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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의 물속은 알아도 한자의 사람마음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이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남에게 속는 일이 가끔 있다.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어떤 일에 속는다는 것은 언짢고 화난 노릇이다. 속고나면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과 아울러, 자신이 못난 놈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큰 손해를 본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결같이 긴장을 하고 남의 진실과 가식을 가리려고 의심을 하는 것이다. 의심은 나쁜 것이다. 그러나 ‘믿는 나무에 곰팡이 핀다.’는 옛말과 같이 진실이라고 믿었다가 좌절하고, 일생을 등지면서 낭패를 당하는 일들을 볼 수 있다. 또 까닭 없이 친절하게 구는 사람에게서 어떤 저의(底意)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다. 화려한 정치적 구호가 누구에게나 메리트가 있으나 세월이 지나면 공약(空約)임을 알 수 있다. 번지르르한 상업광고 일수록 진실이 신통치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불신사조(不信思潮)를 없애자고 악을 쓰는 인간이 도리어 희대의 사기꾼인 예도 우리는 가끔 보아왔다. 요즘 TV에서 야야정치인들의 하는 토론회에서는 어느 한쪽의 많은 사기(詐欺)를 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니까 믿지 않고 경계하고 따지고 의심하는 악덕(惡德)은 도리어 삶과 문화의 밑거름이라는 역설을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에 관해서,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에 관해서, 사르트르는 사회적 관례에 관해서 그런 의심(疑心)의 악덕을 유감없이 발휘해서 진리를 얻은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물론 그런 위대한 인물이 아니다. 하찮은 월급쟁이, 하루의 일과를 마땅하게 처리 할 줄 잘 모르는 빈약한 지성의 소유자, 부귀영화 꿈을 꾸면서 열심히 남의 뒤를 따르는 비겁한 추종자,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진실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위인이 아닌 우리들은 허세를 부리고 상대를 기만하고 속여야만 삶을 만끽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실은 가식(假飾)에 호도(糊塗)되어야만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 나름대로 의심을 시작 되어야 하는 것만 같다. 그래야만 우리는 남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고, 속이는 자들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회가 안 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장식용 가식(겉)과 현상(속)의 상이성(相異性 )을 파악 하려는 것이 의심이다. 이런 관점에서 겉은 매우 복잡하고 심각하지만 속은 매우 간단한 경우와 그 정 반대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각각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가령 여기에 인생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삶이 감옥이며 비극이라고 느끼고 그런 느낌에서 출발해서 염세철학 소유자가 된다. 그러나 그 현상의 궁극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처가식구들이 처의 가치관이 변경 되는 선까지 관여해서 생긴 것이 사실이라면 처의 그 어렵고 우울한 염세 철학은 처가 식구와 거리감 유지로 간단히 해결 할 수 도 있는 노릇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종기가 의사의 진단결과 악성 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간단해 보이는 겉이 복잡한 속과 얽혀 있고, 반대로 복잡해 보이는 겉이 간단한 속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에 이르는 것은 방금 든 예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쉽지 않으니까 우리는 늘 시행착오나 오해로 인생을 좌절과 희생으로 빠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진실한 개인의 발전도 사회의 발전도 겉과 속을 정확히 인식되지 못한다면 결코 기약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칫하다 암의 종기에 고약만 바르는 엉터리 의사가 되고, 하찮은 원인의 슬픔을 비관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가 된다. 물론 본질적인 것을 밝혀내는 길이 무슨 기성복처럼 준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겉의 현상만을 믿지 않으려는 꾸준한 의심과 이 의심에서 출발해서 속을 파보려는 지성의 훈련이 필요한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김   찬    집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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