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장죽(長竹)
[세평시평] 장죽(長竹)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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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죽(長竹)은 담뱃대다. 그것도 아주 긴 대나무로 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즐겨 무는 여송연(呂宋煙- cigar)과는 다르다. 지금은 골동품상이나 관광지 토산물판매점 등에서만 구경할 수 있는 희귀한 물건이 되고 말았지만, 예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기호품 중의 으뜸이었다. 우리의 풍속화를 보면 여기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있다. 장죽이 없으면 그림이 아니 될 정도이다. 이토록 장죽은 담배를 피울 때는 물론이고, 나들이에도 필수적인 애완구(愛玩具)나 마찬가지였다. 야유회를 하든지, 잡기(雜技)놀이에도 장죽은 등장한다. 남자들뿐만 아니라, 노파와 기방의 기생들도 애용하였다. 장죽은 서당 훈장의 회초리로도 대용(代用)되었다. 심지어는 동물을 내쫓는데도 긴요하게 쓰였다. 김득신(金得臣)의 파적도(破寂圖)를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어느 봄날, 고양이가 마당에서 한가히 놀고 있던 병아리를 물고 달아난다. 주인이 이 묘적(猫賊)을 잡으려고 장죽을 마구 휘두르다가 그만 나동그라지는 광경은 정말로 재미 만점이다. 이와 같이 옛 어른들은 장죽을 흡연용으로만 이용하지 않고 다양하게 활용하였다. 그렇다면 장죽은 왜 길게 만들었는가.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니코틴의 해독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석자나 되는 ‘안전 담뱃대’를 제작해낸 것이다. 장죽은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지휘봉과 훈육용으로 장죽은 더욱 그 진가(眞價)를 나타낸다. 온돌방 아랫목에 편안히 누운 채로도, 이 장죽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능이었다. 예를 들어 장죽을 한번 두들기면 “방으로 들라”, 두 번이면 “밥상을 들여오라”하는 식이다. 또 세 번 두들기면 “밖에서 떠들지만 말고 글을 읽어라”는 뜻으로 통하는 것이다. 장죽은 무뢰한을 퇴치하는데도 안성맞춤이었다. 기다랗고 단단한 담뱃대를 휘두르는 데야 아무리 무지한 자라 할지라도 도망가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했을 테니까. 이러한 장죽이 협상의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외교가에는 ‘협상용 파이프’라는 신화와 같은 얘기가 실제로 전해오고 있다. 다름 아닌 한국일보 창립자 장기영 사주가 바로 주인공이다. ‘장기영’ 그는 누구인가. 금융인·언론인·체육인·정치인· 문화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 폭 넓게 살다간 우리들의 ‘큰 별’이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내면서 많은 경제적 업적을 세웠으며, 70년대에는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그 특유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해외출장 시에는 어김없이 장죽을 소지하고 다녔다. 짧은 담배를 피우는 외국고관 앞에서, 장죽을 입에 물고 협상하는 의젓한 태도를 상상해 보라. 뿜어대는 담배연기와 함께 위엄을 드러내는 자세야말로 상대를 압도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영국의 ‘윌슨’수상을 만나서 장죽을 과시했는가 하면, 미국의 ‘존슨’대통령이 방한했을 때에는 이를 선물하며 “우리 선인들이 중국과 같은 대국과 협상하면서 상대방을 누르려고 이것을 무기로 이용하였다”고 자랑하기도 하였다. 우리들 보통사람으로서는 생각치도 못할, 그렇게 훌륭하고 담대한 그였다. 하지만 어쩌랴. 1977년 4월, 향년 62세의 나이로 운명(殞命)하였으니 안타깝기만 한 일이다. 더구나 그가 사장으로 있을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 있었기에, 여태까지도 애통하는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엽궐련(葉卷煙)하면, 으레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연상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더 멋있는 ‘장기영’과 ‘장죽’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장죽은 예찬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한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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