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저의 인생을 한탄하면서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오늘 살아서 이 자리에 와서 남편의 동상을 보니 그동안 쌓였던 한이 다 씻어져 내리는 것 같습니다.”
지난 1967년 주월 한국군 닌호아 작전시 최전방 전투원으로 참가했다 작렬하게 전사한 ‘베트남 전쟁의 영웅’ 故 송서규 대령의 미망인 허록 여사(74)의 말이다.
6일 월남참전위령탑 및 故 송서규 대령의 동상이 세워진 제주시 충혼묘지 앞 광장에서 고 송서규 대령 39주기 추모식이 육군보병학교 갑종7기회(회장 이용택)주최로 각계 인사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숙연한 분위기 속에 열렸다.
2차례에 걸친 폐암 수술로 가만히 있어도 숨이 헉헉 차오를 정도로 병든 몸을 이끌고 서울에서 이 곳 추모식장을 찾은 허 여사.
지난 5월 송 대령의 동상제막식이 있었지만 건강이 악화되고 기상까지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했던 허 여사는 이날 추모식에는 산소호흡기라도 달고서라도 꼭 남편을 보러 가겠다는 각오로 이날 추모식에 참석, 40년의 긴 세월동안 쌓였던 회한을 모두 씻어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이화여고 3학년이었던 허 여사는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국군간호사관학교 1기이자 생도 1번으로 참전하는 등 군에 발을 들여 놓은 인연으로 61년 송 대령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결혼 후 2남1녀를 두었지만 장남과 딸을 먼저 보내는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혼 5년만에 다시 남편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잃어버렸다.
허 여사는 “남편처럼 이역만리 땅에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숨져간 장병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그 때 흘리지 못한 눈물을 평생 가슴 속에 안고 흘리고 다녔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분들로부터 감사의 인사와 남편의 동상까지 보니 이제 인생을 마무리해도 여한이 없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 고 송서규 대령
송서규 대령은 지난 1993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51년 6월 육국보병학교 갑종7기로 자진 입대, 같은해 12월 육군소위로 임관한 뒤 66년 백마부대 대대장으로 월남에 참전, 오작교 작전, 비마작전, 부르도자작전 등 많은 작전에 참가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하지난 67년 오늘 임기가 끝나고 귀국을 이틀 남긴 상태에서 닌호아 지역에 월맹국과 베트공이 침투하자, 현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후임 대대장에게 작전지휘를 맡길 수 없어 직접 지휘하게 된다.
그러던 중 1개 중대가 적에게 포위되고 중대장과 소대장이 부상당하는 등 위급한 상황에 놓이자 특공조를 편성 직접 최일선 전투를 감행하며 위기를 모면, 부하들을 구출했으나 자신은 적의 집중공격을 받아 전사했다.
이 같은 송 대령의 살신성인과 불굴의 군인정신을 기려 1계급 특진과 군인으로서는 최고 영예인 태국무공훈장이 추서됐고 현재 유해는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