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FTA 협상 질질 끌어라"
[김덕남 칼럼] "FTA 협상 질질 끌어라"
  • 김덕남 대기자
  • 승인 2006.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학생과 조폭과의 관계

"네가 스스로 옷을 벗을래, 아니면 내가 벗겨줄까."
'우락부락한 사내가 두 눈 부릅뜨고 길 가던 여학생을 희롱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비유의 적절성을 떠나 한미 자유무역(FTA) 협상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의 심정은 안타깝지만 이처럼 비루하다.
한미 FTA 협상의 찬반을 떠나서 그렇다.
여학생처럼 여리고 약한 한국측이 덩치 큰 조폭 수준의 미국과 대거리 할 수 있겠느냐는 자괴감(自愧感)일 터이다.
이와는 별도로 협상체결후의 피해의 강도(强度)나 충격은 미국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27일 끝나는 제주에서의 한미FTA 4차협상이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데 안도하는 이들이 많다. 역설적이게도 연내 타결이 힘들 것이라는 전망에 고소해하거나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한미 FTA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격렬한 반대 그룹에서든, FTA의 불가피성을 긍정하는 쪽에서든, 이 모두가 한미 FTA와 관련한 정부의 밀실결정이나 졸속추진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졸속 추진이 문제

왜 이럴까. 먼저 정부의 졸속추진이 문제였다. 앞 뒤 재어보지도 않고 "내가 먼저 미국시장을 먹고 보자"는 어리석은 조급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시장은 어떤 곳인가.
거리에서 붕어빵 찍어 팔 듯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시장통 "골라 골라" 식 손바닥 치기 장사가 먹힐곳은 더욱 아니다.
세계 최대 최고의 경제대국이다. 공룡시장이 된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아무런 뒷감당 없이 부나비처럼 무모하게 미국시장에 돌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왜 미국이 아시아 국가 중 시장 규모가 큰 중국이나 경제대국인 일본을 마다하고 한국과 협상을 하려 하는 가이다.
'만만한 게 홍어 뭣'이라고 "한국을 아시아 시장 개방의 교두보로 삼으려는 고도의 미국측 전략"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이 수출강국이기는 하나 미국 내수시장을 교란시킬 만큼 영향이 크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을 미끼로 중국이나 일본을 자극하여 이들과의 FTA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맡는다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미국 FTA에 유인하기 위한 '떡밥'이거나 '밑밥'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더욱 화나게 한다.

'만만디 작전'을 펴야한다

물론 세계시장은 개방화 블록화로 급변하고 있다. 우리만 문 걸어 잠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미국시장을 선점하여 중국 등을 견제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머리 굴리기'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너무 갑작스럽게, 그리고 너무 졸속 적으로 한미 FTA가 추진되었다는 것은 무슨 정치적 의도나 말못할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식 '만만디(漫漫的) 작전'을 빌려 쓰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세월만 가라"는 식으로 질질 끌어 2008년도 협정 발효 시기를 한 10년 뒤로 미루며 준비하라는 것이다.
부끄럽고 조악하고 황당한 조언이지만 오죽해야 이 같은 비상식적 비 외교적 발상이 나오겠는가.
차제에 최근 '한미 FTA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답은 열린 경제'라는 칼럼을 썼던 독일출신 칼럼니스트 '타릭 후세인'의 조언을 상기시키고 싶은 것이다.
"시장 개방이전에 내부의 열린 경제 운영으로 경쟁력을 키운 다음 FTA에 임해도 늦지 않다."

김   덕   남 (주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