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5ㆍ16 도로에 기름값 쏟아붓는 사연
[데스크 칼럼] 5ㆍ16 도로에 기름값 쏟아붓는 사연
  • 임창준
  • 승인 2006.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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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하반기부터 1년정도 필자는 당시 재직하고 있던 중앙 일간지 제주도 주재기자로는 처음으로 서귀포와 남제주군 지역에 상주하면서 현지 취재활동을 벌인 바 있다.
본사의 현지 근무 명령을 받고 가보니 남제주군이 사용하던 청사를 헐고 새 청사를 짓느라고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매일 군청을 오가는 내가 보기에 당시 청사는 관리를 잘 해서인지 몇 군데 금이 가고 허름했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안전에도 문제가 없었다. 태풍이 불어도 별로 비가 새는 곳이 없을 정도로 청사는 잘 정비돼있었다.
왜 이런 멀쩡한 청사를 헐고, 그 위에 수십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굳이 신청사를 지을까? 당시 전국적으로 인구가 50만명 아래이거나 생활환경이 비슷한 작은 자치단체들이 통합하던 시기였다. 한 예로 전남 여수시와 여천시, 여천군이 이른바 '3여'도 이 즈음에 통합됐다.
당시 남제주군 인구가 10만명을 밑돌고, 서귀포시는 8만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는 1981년 서귀포시가 남제주군에서 독립해 떨어져나간 것은 큰 과오이며, 주민혈세를 갉아먹고, 공무원들에게 좋은 자리를 보급하기 위한 관 편익 행정이기에 ,하루빨리 종전대로 남제주군과 한 울타리로 환원돼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그런데 남군이 엄청난 예산으로 또다시 새로운 청사를 짓겠다니 말이나 되겠는가. 나는 이를 보도했다. 지방지는 어찌된 일인지 침묵했다. 이를 취재 보도하는 과정에서 군청 간부들이 나를 적극 말렸다. (나중에 군 간부들이 청사 신축관련 뇌물 혐의로 구속됐다).
지난 7월1일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4개 시. 군이 폐지되고 이들 폐지된 시. 군이 도(道) 로 흡수되면서 남제주군을 통합한 서귀포 (행정)시는 인력 및 청사 재배치 등으로 혼란이 이만저만 아니다. 특히 제주도청 조직을 균형발전 차원에서 서귀포 행정시에 농촌진흥원, 감사위원회(감사실), 문화관광스포츠국 등을 구 서귀포청사(현 서귀포 행정시 2청사)에 배치했다.
서귀포행정시 주청사는 도심지에 있는 종전의 남제주군 청사로, 종전 서귀포시 청사는 제 2청사로 사용하고 있다. 통합 서귀포 행정시 청사가 2개로 나눠진데다 도청 청사 사무실들도 이곳에 입주해 있는 것이다. 남제주군 청사가 남아돌다보니 이런 꼴이돼버렸다.
행정시장과 부시장 등 간부들은 제 2청사(구 서귀포시청사)를 왔다갔다하고 직원들은 서로 업무협의 및 결재차 왔다갔다 하느라 난리법석이다. 제주도청에 있던 상당수 공무원들도 서귀포를 출퇴근하느라 5. 16도로에 비싼 기름값을 쏟아붓고 있다. 어떤 시청 공무원은 도 본청에 볼 일 있어 하루에 1번 오가다보면 어두어버린다고 푸념이다. 민원인들의 불편은 이만저만 아니다. 제주시 화북동 민원인이 겨우 서귀포시청 본청사엘 갔더니 2청사에 가라고 하더라는 게다. 더욱 가관인 것은 문화관광스포츠국의 5개 과 가운데 문화예술과는 제주도청에 있어 한 국(局)이 두 지붕 살림살이하는 기묘한 일까지 생기고 있다.
얼마전 한 종교단체가 서귀포 청사에 있는 이 국(局)을 제주도 본청으로 환원하라고 요구하며 대문짝만한 광고를 신문에 내기도 했다.
이 모두가 남제주군 청사를 잘못 지은 탓이다. 자기단체 이기주의에 함몰된 당시 군 간부와 청사 신축을 도운 도 간부들은 엄청난 도민혈세를 낭비한 공동정범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뇌물먹은 공무원의 죄가 클까, 아니면 예산을 낭비한 공무원의 죄가 더 클까?
나는 감히 후자의 죄가 더 클 것이라고 단언한다. 부패 공무원 문제는 매우 시끄럽게 사회적으로 회자되고 감방에도 가지만, 예산낭비를 초래한 공무원 당사자가 크게 거론되는 일이 없고, 더욱 감방에 간 일을 들은 적 없다. 가칭 ‘예산낭비특별죄‘를 제정하면 어떨까?

임    창    준 (편집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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