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우리들 마음속의 '아Q'
[세평시평] 우리들 마음속의 '아Q'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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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은 1921년 발표되기 시작한 루쉰의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제국주의 침략으로 혼란기에 있던 중국 사회의 내적 모순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루쉰은 아큐를 통하여 무기력하고 비겁하게 살아가는 중국의 민중을 형상화했다. 잡다한 일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아큐는 사람들의 어떠한 경멸에도 흔들림이 없다. 그런 데에는 그만의 삶의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들이 놀려대는 언행과 행동을 그에게 하더라도 그의 정신만 한번 거치면 아큐는 스스로 승리자가 된다. 어떠한 위기에도 그는 자기 경멸로써 비굴하게 대처하며 정신적인 승리를 맛본다. 그처럼 이 소설은 대국의식에 사로잡혀 자기만족을 하면서 중국의 처한 현실을 바로 바라보지 않고 도리어 외면하는 우매한 중국민족 자체를 풍자하였다. 아큐라는 인물을 통하여 루쉰은 중국민중이 스스로 각성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도록 바란 것이다. 그런 작품 속 주인공 아큐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어쩌면 아큐는 루쉰이 작품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큐는 내 안에도 존재하고 주의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특히 자기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에게 아큐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진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산업화와 정보화된 사회에 있어서도, 정신적인 압박과 부조리한 일상들에 이리저리 치이는 소시민적 삶에 있어 아큐는 하나의 삶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문제는 아큐의 특징이 노인들보다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젊은이를 보면 도전의식이 많이 사라졌다. 아직 결정되어지지 않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음이 안타깝다. 대학을 나오고 취업을 함에 있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모험을 선택하는 것보다 요즘은 먼저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직업의 선호도 또한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자기 자신의 에너지를 맘껏 쏟아보기도 전에 미리 포기하며 자신을 비하시킴으로써 삶의 안정을 취하는 아큐적 특징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안정적인 일을 찾아 안주하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사회가 불안하다는 증거니까. 사회가 불안하다는 것은 결국 도전의식이 사라진 고령화 사회임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몸은 젊은데 정신은 낡은 사회. 노인의 힘은 삶의 깨달음인 여유로움에서 우러나온다. 그것은 비겁하거나 피하고 보자 식의 해결방법이 아니라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힘이다. 건강한 노인이 아닌, 도전해서 삶을 살아본 적 없이 비굴하게 늙어버린 그런 사회가 문제인 것이다. 좋지 않은 일을 당해도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과거에 나도....”, “만일 나도 이랬었다면......” 하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로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큐의 비굴한 삶의 태도와 비슷하다. 문제의 본질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재대로 보지 않는 어리석음이다. 우리 내면에서 우리의 눈을 가리게 하는 아큐는 무엇이든 합리화해버리는 헛된 자긍심, 이기심, 두려움 같은 것이다. 강한 현실 앞에 약한 자신의 모습이 바로 자기 안의 아큐이다. 니체는 거지를 돕지 말라고 했다. 낯선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정원의 나무 열매를 맘껏 따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거지만은 절대 안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거지에게는 줘도 화가 나고 안 줘도 화가 난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가난은 죄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삶이 가난한 것이지 인격조차 비참하지는 않다. 하지만 거지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듦으로서 타인에게서 무엇을 가져가려고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자기 자신을 비열하게 만들면서도 속으로는 스스로 영웅심에 자기만족을 하는 아큐나, 거지의 삶의 방식이나 비슷하다. 니체는 주고받음에 있어서 떳떳함의 문제를 중요시 여겼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친구의 입장에서 대등하게 오고 가야 함을 강조하였다. 물론 아큐의 삶의 방식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내면의 진정한 이해에서 우러나온 너그러움 같은 것이라면 말이다. 아큐는 인간이 살아 있는 한 늘 우리와 공존할 지도 모른다. 아큐는 자신도 피해자이다. 피해자는 늘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고 상처를 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큐를 달래고 보듬어 안으며 건강한 아큐로 환생하도록 늘 노력하며 살아가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   연   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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