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고, 인류의 역사는 곧 기록의 역사이다. 고대 인류문화의 발생 이후 지금까지 역사가 유지돼온 것은 인간이 남겨놓은 기록 덕택이었다. 기록의 역사가 현존함으로써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요, 동시에 오늘의 기록이 있음으로 해서 내일의 역사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인류가 만든 위대한 유산은 기록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며, 따라서 인류가 이룩한 모든 학문과 문화 역시 기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의 생활이 발전하고 유지ㆍ계승되는 것도 기록과 함께하고 있는 덕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자체가 기록이고, 기록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라 할 수 있다. 문화의 창조와 전승을 중요시하던 우리 선조들은 정치적ㆍ사회정ㆍ문화적 삶의 결과물로 수많은 기록을 만들어 냈으며,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려진 훈민정음ㆍ조선왕조실록ㆍ승정원일기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가치 있는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보존ㆍ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로 인해 귀중한 기록들이 사전 충분한 검증 없이 폐기 사장(死藏)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서 기록, 특히 공공기관 기록 보존의 중요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행정의 투명성과 책임행정의 확보를 위해 중요하다. ‘기록’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권력남용이나 부정부패 등을 견제ㆍ감시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행정이 투명해지고 각종 행정비리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뭐니 뭐니 해도 문화유산으로 후대에 전승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는 훌륭한 기록문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 조상들의 기록물은 그 방대함과 정교함에서 세계 으뜸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뛰어난 기록문화의 예지를 본받아 우리도 후손에 대대로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신분과 재산 등의 권익보호를 위해서 중요하다. 국가기록원의 지적원도가 ‘주인 모르는 땅’을 찾는데 긴요한 증빙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 필요성을 알 수 있다. 행정경험과 행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기록 보존이 잘 되어야 행정경험과 행정기술 등의 축적ㆍ전수가 용이하다. 또 행정의 능률성을 높이며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게 된다.
학문의 발전과 지식정보의 활용을 위해 중요하다. 학문에 있어 기록은 절대로 없어서는 아니 될 필요조건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의 구현에도 기록이 불가결한 요소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7월 1일 제주특별자치도의 출범과 더불어 제주도 본청에 ‘탐라기록물관리소’가 설치되었다. 제주도 당국이 기록보존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타 지역에 앞서 ‘기록물관리기관’을 신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기록관리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고 있는 양제윤 공무원은 “명실 공히 제주 지방기록물관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며 당당하게 포부를 밝히고 있다.
정말로 다행스럽고 치하할 일이다. 탐라기록물관리소는 앞으로 공공기록물의 철저한 보존ㆍ관리를 통해 제주의 행정역사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계승될 수 있게끔, 이의 기반구축에 전력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은 초보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 현재 전담공무원은 겨우 3명, 그나마 1개 과인 총무과 소속으로 되어있다. 인력의 보완은 물론이고, 독립기관으로서 하루빨리 별도의 청사를 마련하여 기록의 관리ㆍ보존이라는 ‘역사적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줄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아울러 기록물의 보다 안전한 관리겫망맛?위해 ‘폐기대상문서’를 재평가하는 작업의 시행과 ‘지방기록물관리위원회’의 구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