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우상파괴자 '리영희' 선생
[세평시평] 우상파괴자 '리영희' 선생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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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역할을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나라, 사회의 변화와 전진을 지켜보면서, 혹시 요구가 있으면 몇 마디를 해주는 것으로 족하지.” 스스로 우상파괴자라고 밝힌 리영희(李泳禧) 선생의 저작활동을 결산하는〈리영희 저작집〉이 출판되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1970년대에 나온 〈전환시대의 논리〉를 시작으로, 2006년 〈21세기 아침의 사색〉 등 모두 12권으로 꾸며졌다. 우리 시대 ‘사상의 은사’로 불리 우며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리영희 선생. 선생의 저서를 읽은 지식인들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충격’을 받았다고 늘 고백한다. 선생의 자서전「대화」에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체험했던 지식인의 삶이 담겨있다.

선생은 197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6년 봄 긴급조치 9호로 해직되었으며, 다시 1980년 봄 복직되었고, 그해 여름 다시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다시 1984년 가을에 복직되어, 1995년 2월 정년퇴임하였다. 암울한 시절, 필자가 한국특수지역선교위원회 실무자로 일하고 있을 무렵, 선생은 해직교수 신분으로 우리들과 어울리면서 시대를 향한 날카로운 담론을 쏟아 붓기도 하였다.

선생은 한마디로 휴머니스트이다. 선생 스스로 밝혔듯이 인도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이고, 덧붙인다면 우리시대가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 우상파괴자이다. 1970년대 「전환시대의 논리」를 통해 베트남전의 진실을 알리면서 미국에 대한 본질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우상과 이성」을 통해 반공주의에 물들어 있던 사회에 큰 파장을 던지기도 하였다.

눈앞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심어줬던 선생의 평생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가려진 진실을 찾는 여정이기도 하였다. 진실을 안다는 것이 죄가 되었던 시대, 선생은 수차례의 연행과 구속, 해직을 겪었지만 진실을 향한 글쓰기는 멈추지 않았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말하면서, 한 쪽으로 심하게 기운 저울이 균형을 이루려면 그 중간이 아니라 그 반대쪽에 힘을 실어줘야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선생이 생각하는, 한국 최대의 우상은 무엇인가? 선생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통치권력배들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판단을 왜곡하는 반공주의(反共主義), 그리고 미국을 절대화하는 숭미주의(崇美主義)이다. 선생은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다. 비판조차 낙관적 신념 없이는 불가능하다.

세상을 좋게 만들어갈 수 있는데도 그런 우상숭배와 거짓으로 국민의식을 마비시켜 망치는 각종 집단들의 존재를 파괴해갈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비판도 가능한 것이다. 선생이 위험분자로 낙인찍혀 직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하면서 베트남전쟁과 중국혁명의 진실을 캐는 데 열중한 것도 정치, 종교, 철학, 사상, 사회현실 등의 비판을 통한 우상파괴 활동의 일환이었다.

50년간의 집필생활을 마감하면서 선생은 “…한국과 한반도에는,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과 세계에는 새로운 희망과 공포가 엇갈리고 있다. …남북민족의 한결같은 평화와 통일의 싹을 무자비하게 뭉개버리려는 제국주의 미국의 흉계는 날로 교활해지고, 그들에 동조하는 국내 기득권세력의 지배욕은 날로 노골화하고 있다. 이들의 본성과 음모를 밝힘으로써…”라고 고백하고 있다. 지금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미국사회, 미국적 가치를 모방하지 말고, 물질보다 인간을, 인간가치와 도덕적 가치를 존중해주기를 당부하고 있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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