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국정운영 좌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청산되어야 합니다. 원칙을 바로 세워 신뢰사회를 만듭시다” 2003년 2월 25일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 일부다. 노대통령은 같은 취임사에서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을 국정운영의 좌표로 삼겠다”고도 했다.
그로부터 만 4년하고도 7개월을 앞둔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만천하를 향해 야심차게, 그리고 야무지게 천명(闡明)했던 ‘대통령 말씀’은 ‘말짱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헛소리를 뛰어넘어 오히려 취임사와는 거꾸로 역 주행했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원칙은 실종 된지 오래다. 변칙이 춤을 추고 권력 주변 부의 발칙한 특권세력들이 활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이라는 국정운영의 좌표는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래서 말많은 대통령의 신뢰도(지지도)가 날개를 꺾고 10%대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전효숙 해법' 백성은 안다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다.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는 ‘전효숙 파문’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며 법률 위헌 여부를 최종 판단해야 하는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함에 있어, 헌법을 유린하고 편법을 동원했다면 어떻게 여기서 ‘원칙과 신뢰’를 찾고 ‘공정과 투명’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가령 이 같은 절차상의 오류나 위법ㆍ편법 사실을 알면서도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여야 정치권의 ‘정치적 야합’으로 봉합한다고 해도 그 ‘위법’이 ‘적법’이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법을 바꾸지 않는 한 ‘위법의 꼬리’는 계속 따라 다닐 수밖에 없고 헌법 재판소는 이 ‘위법의 상처’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터이다.
이는 임기 마지막 코스에 진입한 노무현 정권의 ‘무리수나 난폭 운전’으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국가 품위에 관한 국격(國格)의 문제다. 헌법을 깔보는 권력의 무소불위(無所不爲)가 얼마나 국가기강을 문란케 하는지를 보여주는 국가정체성의 문제여서 그렇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지명철회나 전씨의 자진 사퇴가 문제풀이 해법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정권 마지막 코스의 안전운전을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상식선의 백성들도 뻔히 아는 ‘전효숙 해법’을 대통령만 모르고 있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원칙 없는 정치'가 나라 망쳐
전제군주 시대에도 국정운영의 윤리가 작동 됐었다. 왕이 제멋대로 요리했던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건 충신의 바른말이 있었다. 역사를 올곧게 기록하는 꺾이지 않는 사관(史官)의 붓도 있었다. 목이 쉰 백성들의 상소도 있었고 나라의 법도도 살아 숨쉬고 있었다.
이런 윤리가 작동하여 국가질서를 세웠고 사회규범을 이끌었다. 그런데도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대명천지(大明天地)의 참여정부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국정윤리를 찾기 힘들다”면 이는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효숙 파문’만이 아니다. 지금 나라안은 “전시작전 통제권이다 뭐다”하며 온통 난리 법석이다. 각종 편가르기로 곳곳에서 ‘갈등과 분열의 독버섯’이 돋아나고 있다. 원칙은 숨죽이고 반칙과 변칙과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다. 신뢰보다는 불신과 미움이 사회분위기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마하마드 간디’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7가지 원인 중 ‘원칙 없는 정치’를 맨 앞에 세웠다. 대통령이나 여야 정치권 모두가 되새겨야 할 경구가 아닐 수 없다.
김 덕 남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