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평시평] 내가 깨면 병아리
[세평시평] 내가 깨면 병아리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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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청자들이 보내온 여러 가훈을 비교한 후 어느 것이 가장 좋은지 경연을 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한 적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독특한 내용의 가훈을 보내왔는데, 그 중 유독 마음에 들어오는 가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이 깨뜨리면 계란 후라이, 내가 깨면 병아리”였다. 살아가면서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어려움의 원인을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외부의 탓으로 돌린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삶을 환경결정론적으로 바라볼 때가 많다.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남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많은 것도 한 특징이다. 자기의 나라(도시국가)를 잃고 토지 소유권이 없던 초기 스토아학파는 도시의 스토아를 자기들의 학원으로 삼았다. 이 학파 대표자의 한 사람인 에픽테토스는 노예 신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삶은 가혹했다. 그는 주인에 의해 다리가 잘리고 학대에 시달리는 환경임에 불구하고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런 상황을 극복해나갔다. 그에게 있어서 자유란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운명에 자기를 동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자연에 굴복하라는 것과는 다르다. 그대로의 자연을 인식하고 자신의 의지를 그것에 일치시키기 위한 수련을 강조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로 조화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오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두려워한다는 것이 스토아학파의 생각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이나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살아가면서 죽는 순간까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 자신의 자유의지의 등불을 높이 들고 나아간다면 삶의 아름다움과 귀중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의 자유의지의 역량을 키운다는 것은 삶을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피부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제 삶은 자신의 자유의지만을 갖고 살아가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은 서로서로의 관계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여러 사람과 관계되어 살아가는 사회 속의 모든 상황에 있어 오로지 자신의 자유의지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모든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서로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도록 관계의 망을 튼튼히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줄탁(?啄)’이란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안에서 병아리가 부리로 껍질을 깨는 그 순간 어미닭이 밖에서 그 소리를 알아차려 같이 쪼아주는 것을 이른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처음으로 열어가는 순간을 비유하는 말로 내면으로부터 생명이 탄생하여 스스로 움직임을 알 때, 밖에서 알이 깨는 것을 도와줄 좋은 스승과 제자가 탄생하는 순간을 뜻한다. 환경이 삶의 가치를 변하게 할 수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유의지를 자신의 중심에 두고서 자신이 남에게, 또한 남이 내게 줄탁과 같은 존재로 노력하며 살아간다면 세상은 보다 살맛이 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자유의지를 삶의 중심에 놓고 줄탁 관계의 스승과 제자와 같이 서로서로 힘이 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삶은 더욱 건강하고 힘이 나지 않을까 싶다.

강   연   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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