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칼럼] '武'의 非禮와 '文'의 자존
[김경호 칼럼] '武'의 非禮와 '文'의 자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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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0일 해군 당국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주해군기지 건설문제를 놓고 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바로 그 직후인 9월 1일이다. 이번에는 제주특별자치도 김태환 지사가 해군기지 설명회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전제로 한 어떠한 내용도 해군 측과 합의한 사실이 없다. 지난 번 설명회에서 해군이 발표한 내년 9월 이후 제주해군기지 건설 본격 착수는 다만 그 쪽의 입장일 뿐이다”라고. 그리고 김태환 지사는 이런 얘기도 덧 붙였다. “도민 합의 없이는 제주해군기지를 강행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입장은 자신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도 밝힌 바 있으며, 지난해 6월 9일에는 당시 이해찬 총리도 국회 발언을 통해 도민들과의 충분한 협의를 강조했었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밝힌 김태환 지사의 발언 내용이 모두가 사실이요 진심이라면 제주해군기지 설명회 때 군(軍) 당국이 발표한 내용은 일방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이는 해군기지 건설을 군 뜻대로 강행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 해 주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제주해군기지 설명회 때 군 당국이 발표한 내용들을, 김태환 지사와의 사전 협의나 합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상기해보면 짐작이 간다. 설명회 때 해군 고위 당국자들은 “제주해군기지는 이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기초 예산도 국회 국방위에서 통과 됐다 했고, 최근에는 제주해군기지사업단까지 창설 됐다고 했다. 특히 오는 11월까지는 해군기지 최종 후보지가 결정될 것이며, 안보문제를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기지 건설 완료 목표연도도 2014년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쯤 되면 군 당국이 막무가내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 되며, 이미 사업에 대한 예비착수에 들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안다.

도민들에게 가장 민감하고도 중차대한 현안 중의 하나인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을, 자치경찰까지 보유한 특별자치도의 민선지사이자 제주도의 주인인 김태환씨와 그 어떤 합의도 없이 나그네인 해군이 단독으로 강행하겠다고 선포한 것은 솔직히 도덕적으로도 비례(非禮)다. 아무리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국책사업이요, 군사시설일지라도 특별자치도의 민선 대표와 아무런 합의 없이, 그리고 도민들의 의견에 관계없이 사업 추진 일정과 내용을 임의적이요, 일방적으로 선언하듯 발표해버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말이다.

비록 막강한 힘을 가진 해군이지만 문민(文民)들과 그 대표인 문민관(文民官)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면 그것은 비례 중에도 큰 비례다. 무반(武班)과 문반(文班)을 하나로 일러 양반(兩班)이라 한다고 들었다. ‘문(文)’과 ‘무(武)’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가 국란 중이냐, 태평성대냐, 혹이면 주변정세가 어떻냐에 따라 문-무, 또는 무-문이 수직관계일 때도 있다.

이 경우 무(武)가 위에 있으면 무단(武斷)으로 흐르기 쉽고, 문(文)이 위에 있으면 문약(文弱)해지기 쉽다. 때문에 인재(人材)의 제1은 문무겸전지자(文武兼全之者)다. 문-무가 겸비해 있으면 문약으로도, 무단으로도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인재는 드물다. 제주해군기지 건설과 관련, 군(軍)이 무단으로 흘러서도 안되지만, 김태환 지사를 비롯한 특별자치도와 그 의회도 문약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해군이 도민들의 뜻을 수용해 주는 것도 무단으로 흐르지 않음이요, 김태환 지사와 제주도 의회가 해군기지의 일방적 추진에 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문약해지지 않은 방법이다. 솔직히 도민의 한사람으로서도 해군의 일방 통행에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데, 하물며 의회와 제주도는 어떤가. 어디 자존심을 지켜 말이라도 한번 소신껏 해보기 바란다.

김   경   호 (상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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