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홍 논설위원
  • 승인 2004.0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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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만이 말을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속성이다. 물론 동물도 말을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인 것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한 두 가지인가. 직립(直立), 웃음, 이성(理性) 그리고 불과 도구의 사용… 그러나 언어만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특성이다.

▶말의 기원은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와 신화는 그것을 중요한 부분으로 포함한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토스’신이 말을 만들었다. 바빌로니아 신화에서는 ‘나부’신을, 인도의 신화에서는 ‘사라스바티’를 말의 창조자로 꼽는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옛날 사람들이 말의 기원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말의 기원을 아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신의 기원을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상 말이 원숭이를 사람으로 만들었다면, 말의 기원이 곧 인류의 기원이라고 해도 그릇된 것은 아니다.

익살맞은 철학자들은 말의 기원에 재치 있고 기술적인 명칭들을 부여한다. ‘푸푸설’ ‘멍멍설’ ‘딩동설’ ‘야호설’ 등 다양하다. 말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감각과 음성의 신비스러운 결합으로 이뤄졌다는 뜻이 거기에 있다. 단체 동작 과정에서 발생되어 의성음적겧宴袖습岵?상태에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쯤에 이르면 그것은 어려운 이론이 된다.

▶말은 변한다. 변화는 오히려 말의 정상적인 상태다. 모든 말은 항시 다른 말로 변한다. 어느 한 언어는 지역과 계층에 따라 다르게 발전하여 방언으로 변한다. 그 방언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별개의 독립적인 언어로 발전한다.

요즘 우리의 정치 판에서 내뱉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경한 느낌이 든다. 친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난무한다. 일반인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말들이 튀쳐 나온다. 인터넷 탓일까. 탄탄한 논리는 뒷전이다.

어쩔 수 없이 감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지만, 그것도 너무 지나치다. 물론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거북하게 느껴서야 되겠는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것은 생활 진리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아무리 정치적 수사라고 하지만, 좀 다듬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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