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도 한물 간 느낌을 주고 있으니 계절의 변화에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9월하면 얼른 연상되는 것들이 있다. 초가을의 높고 푸른 하늘과 황금들녘, 그리고 거둬들임(收穫)과 독서이다. 이 가운데서도 ‘책읽기’는 학생과 젊은이들에게 특히 강조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한마디로 ‘사람답게’살기 위해서이다.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지적양식(知的糧食)과 현명한 판단력은 대부분 책을 통해서 얻어지기 까닭이다.
우리에게 과연 이러한 지식과 인생철학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남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가 아닌 남의 지식과 남의 결정, 남의 가치관에 의하여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줏대 없는 사람이 되고,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굴종하는 노예가 되고 만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현대 평등 사회에서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읽기를 어렵게 여기고 책을 멀리하기가 십상이다.
독서의 생활화가 안 되어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방법도 잘 모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독서지도를 받아보지 못한데 있다. 학교에서도 그 중요성을 인정하고 주장은 한다. 그러나 암기위주의 입시교육에 급급해 하는 실정에서, 정상적인 독서지도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독서환경에도 문제가 있다. 책은 원래 정보ㆍ흥미와 사고력 등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 이 중 정보와 흥미라는 두 가지 책의 자리를, 텔레비전과 비디오ㆍ컴퓨터가 대신 차지해 버렸다. 그만큼 독서의 비중과 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뉴스나 재미라는 측면에서 책은, 도저히 이들 문명의 이기를 능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방관만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사고(思考)와 상상력을 넓히려면 아직도 책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독서에 대한 동기유발이 필요하다. 책을 읽자마자 금방 돈이 생긴다고 하면, 너도나도 독서를 하려고 달려들지 않겠는가. 당장에는 아니더라도 먼 훗날, 돈보다도 더 귀중한 그 무엇인가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신념을 불어넣어주는 범국민적 ‘책읽기운동’은 어떨까. ‘독서력은 곧 국력’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독서의 권장(勸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이다. 더불어 늘 책과 가까이 할 수 있게끔, 움직이는 ‘동네 문고’와 규제 없는 ‘작은 도서관’의 설치를 적극 장려해줄 것을 당국에 건의하고자 한다.
책을 멀리하는 사회는 생각을 거부하는 사회나 다름이 없다. 사색하지 않는 인간이 시든 인간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생각을 거부하는 사회 역시 생기가 없는 메마른 사회이다. 독서의 습관화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든다. 요즘은 가을을 굳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는다. 계절에 관계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독서를 경시(輕視)하는 풍조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쨌든 책은 마음의 식량이며 무한한 능력을 제공해주는 보고(寶庫)이다. 9월은 가을이다. 이 좋은 달을 독서하는 즐거움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으면 싶다. 책읽기와 관련된 사자성어가 새삼 떠오른다. 등화가친(燈火可親)ㆍ독서삼매(讀書三昧)ㆍ위편삼절(韋編三絶)ㆍ주경야독(晝耕夜讀)등등. 또 ‘날이 맑으면 밭을 갈고, 비가 오면 글을 읽는다’는 청경우독(晴耕雨讀)도 있다. 퇴임을 하면 여유를 가지고 실컷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는데 뜻대로 되질 않는다. 게으른 탓인가, 아니면 자꾸만 침침해 오는 눈(目)이 원인인가.
이 용 길 (전 제주산업정보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