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양의 탈을 쓴 '대한항공'
[김덕남 칼럼] 양의 탈을 쓴 '대한항공'
  • 김덕남 대기자
  • 승인 2006.0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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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하고 건강했던 소녀 ‘브루크’는 중학 입학 한 달만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그러나 ‘브루크’는 좌절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브루크’는 2000년에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하버드 대학 최고 영예인 ‘수마쿰라우드(최우수 졸업 상)을 받았다.

심리학 전공의 ‘브루크’는 훗날 어머니와 함께 쓴 책 ‘기적은 일어난다(miracles happen)’에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서로에게 기적이 되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장애인들의 ‘아름다운 성취’를 기적이라 한다면 거기에는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있음으로 가능하다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장애인들은 사회적 약자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들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장애인 보살핌 중심에 국가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가 정책과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적 관심과 가진 자들의 배려가 어우러져야 ‘보살핌의 열매’가 여물 것이다. 특히 장애인들에 대한 가진 자들의 배려가 무르익어야 사회 공동체는 더욱 영글고 튼실해 질 것이다.

 ‘가진 자들’. 그 앞자리에 재산을 일구어온 재벌 기업들이 있다. 그들이 축적하고 누리는 부귀와 영화의 9할은 가지지 못한 경제적 약자들의 소비가 있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가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윤추구만이 아니고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을 통해 공익에 이바지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부문화가 싹트고 열매 맺는다.

달포 전 미국의 ‘빌 게이츠’가 자선사업가가 되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워런 버핏’이 자기 재산의 85%인 374억 달러를 사회에 기부하고 나머지 15%도 죽기 전에 몽땅 환원하겠다고 공표한 것은 얼마나 빛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인가.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은 어느 수준인가. 보신(保身)을 위한 마지못한 사회 환원과 게걸스런 탐욕만 있을 뿐이다.

최근 장애인들을 상대로 한 대한항공의 ‘등치고 간 내먹기 식’ 기업윤리는 바로 수치스러운 한국 기업윤리의 전형(典型)이다. 대한항공은 기금까지 4~6등급 장애인들에게 50%씩 항공료를 할인해왔다. 그런데 9월부터 할인혜택을 30%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수익 창출의 일환일 터이다. 항공료 인상의 전초 작업인지도 모른다. 장애인을 위한 할인 혜택은 지난해 기준 국내선 요금 수익 6200억원의 1%에도 영향을 주지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도 따스한 손을 내밀어 보호해 줘야 할 이들 사회적 약자의 호주머니를 털어 수익을 올리겠다는 발상이다. 여기서 어떻게 정상적인 기업윤리를 찾을 것인가.

“강한 회사(strong company)보다 좋은 회사(good company)를 지향한다” 지난 2000년 기업윤리 강령을 문서화 한 한진그룹의 경영 슬로건이다. 기업활동을 통해 “공익적 가치 실현을 극대화 하겠다”는 것이 한진 윤리경영의 핵심이다. 그런데 어떻게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제약하며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 ‘좋은 회사’이며 ‘공익 가치 실현의 극대화’란 말인가. 이것은 양의 탈을 쓴 악덕 기업윤리일 뿐이다.

장애인들에게 기적을 일구는 힘이 되어주지는 못할 망정 삶의 한 방편을 짓밟아 버리겠다는 대한항공의 탐욕은 그래서 한국기업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대한항공은 지금이라도 ‘장애인 항공료 할인 혜택 축소 방침’을 철회하기 바란다. 최소한의 ‘기업 양심’이란게 있다면 그래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미 빨간불이 들어와 구겨지고 악취 풍기는 ‘기업의 양심’을 추스르는 기회를 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김   덕   남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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