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속담에 쌀 99가마니가 있는 사람이 쌀 한가마니 더해서 100가마를 채우려한다는 말이 있다. 이건 가난한 우리 조상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이다.
곡식이 가득 차 있어도 내년 흉년에 들지 않는다는 법이 없으니 한 톨이라도 더 모아야한다. 이것은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찌든 가난이 우리를 극한 심리까지 몰고 간 것이다. 넘쳐도 남을 여유가 없는 가난의 심리가 우리를 끝없는 비축에 강박관념 환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자식에게 재물을 물려주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 노후를 위한 노후 보험 성격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산업화 시대에는 노후의 보험을 자식에게 맡기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그래도 자식에 대한 철저한 보호의식이다.
이점에서 보면 지구상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것이 한국의 어머니다. 그들은 자기가 죽은 후에도 자식들이 배가 고파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모아도 끝이 있을 리 없다. 언제나 모자란다. 여유가 없으니 초조하고 불안하다.
자기 분수대로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쓸 줄 아는 그런 멋쟁이가 우리 주위에 몇 명이나 있는가? 이런 면에서는 서양 사람의 생활을 본받을 만하다. 그들은 돈을 벌되 우리네처럼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들의 보통사람으로서 재산은 어디까지가 적정선인가? 사람들은 그 선을 긋기가 참으로 어려운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분명하다.
결론은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한계이다. 선은 여기다. 그어 놓고 살아보라. 그런 순간부터 당신의 인생은 한결 여유가 있고 풍요로워 질 것만 같다. 그렇게 아옹다옹 할 것도 없다. 정말 느긋한 하루가 될 것이다. “공부나 시키고 짝이나 지어주면 되지”이건 흔히 듣는 소리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능력이 있으면 학비정도는 부모가 도와주어야하지만 결혼은 당사자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이 호화판 찬치를 벌린다. 오래지 않는 일이다. 국세청에서 결혼식 때 신부의 부조금에 대하여 상속세를 부과한 신문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부잣집 아이들 사람 만들기 힘 든다는 건 모두 들 아는 일이다. “설마하니 우리 집 애들이야” 하고 편하게 생각 마라. 따져보자. 우리 집에도 돈이 많은데 자식들이 왜 애써 살려고 뛸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편하고 싶고, 또 한번 편해 본 사람이면 쉽게 거기에 물들어 버린다. 웬만한 인격자가 아니고서는 집에 재산 있는 것 놔두고 사서까지 고생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자식하나 인간 만들어 보겠다고 용돈 일부러 안주는 부모도 있지만 이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없어서 못주는 것과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있고 안주면 애들에겐 당장 반항심이 생긴다. 주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라는 부모의 약점을 아는 이상 이런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 요즘은 아예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는 녀석도 있다. 이건 소설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가난을 찬양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산 모으는 욕심은 비우라는 말이다. 부의 세습은 3대를 못 간다고 한다. 지금 60대 라면 초중등학교 시절 부자 집 친구들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자식에게 유산을 물려줄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물려줄 게 있는 이상 애들이야 당연히 앉아 기다릴 것이 아닌가? 궁하면 통한다고 한다. 믿을 게 없으면 자기 힘으로 뛰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린 돈이 없으면 아이들이 걱정 할까봐 그 사실을 숨긴다. 카드 깡을 해서 신용불량자가 될 각오로 학비를 주면서도 그런 내색조차 않는 것이 한국의 착한 어머니다. 하지만 자식들이 책임질 나이가 되면 걱정도 부모와 함께 할 수 있게 해야 강하고 야무진 사람을 되기 때문이다.
김 찬 집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