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정보상업고등학교의 전신인 함덕농업고등학교의 설립배경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고등학교를 설립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중학교를 설립하려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고등학교를 설립하게 되는 과정을 알 수 있다.
함덕농업고등학교 설립의 중심에는 학교를 설립하여 마을 발전의 밑거름을 마련하기 위한 함덕리 주민들이 있었다. 당시 함덕리민들은 중학교를 설립하려고 동분서주하였다.
조천면 지역에는 신촌리에 있는 조천중학교가 유일하였다. 함덕을 비롯하여 함덕 주변에 있는 북촌 ? 신흥 ? 선흘리에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신촌까지 통학하며 중학교를 다녀야 했으며, 이로 인한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함덕과 같은 큰 부락에 중학교가 없다는 게 리민들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해 있었기 때문에 중학교 설립에 대한 욕구와 열의는 대단하였다.
당시에는 통학거리와 가정사정 등으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고등공민학교가 제주도 전역에서 설립되기는 하였지만 여기를 졸업한 학생들에게는 정규 중학교 졸업자격이 인정되지 않았다.
함덕에도 고등공민학교가 설립(1951.09.14, 설립자 당시 조천면장 한행철)되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한편으로는 중학교 승격 설립을 위한 교사 신축을 추진하며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1개 면 1개 중학교 설립’이라는 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함덕에는 중학교를 설립할 수가 없었다.
반면에 고등학교의 설립은 가능하였다. 제주도 교육사 편찬계획에 따른 함덕농업고등학교가 작성하여 제주도교육위원회에 보고한(1979.04.18) 학교설립과 관련한 자료에 의하면 함덕지역에 고등학교를 유치하게 된 과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중학교 설립 무산으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실망감으로 허탈에 빠져 있었던 리민들은 중학교 대신 고등학교 설립이라는 원대한 꿈에 또 다시 도전하여 전력을 투구하였다.
설촌 이래 역사적 사업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학교 설립에 힘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조천에는 중학교가 있지만 함덕에는 고등학교가 설립된다.’는 우월의식으로 이민(里民)들을 단합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고등학교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마침내 학교설립 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으며 준비위원회의 활동으로 1951년과 1952년 2년에 걸쳐 총공사비 1억 8천 5백 85만원을 투자해 보통 교실 3개, 교장실 1개, 직원실 1개, 숙직실과 화장실 1동 150평의 교사 및 부속 건물을 완공하였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치는 한편 학교 부지 17,040평의 토지(함덕리 993번지)를 김봉희씨 외 7인으로부터 기부 받아(1952년 1월 10일) 학교 설립 준비를 마치고 1953년 4월 1일 개교를 목표로 1952년 9월 제주도를 거쳐 학교설립 인가를 신청하였다.
학교 설립 신청 서류를 접수한 문교부는 같은 해 12월 29일 ‘함덕고등학교’를 ‘함덕농업고등학교’로 변경해 재신청하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학교설립 기성회는 ‘함덕고등학교’를 ‘함덕농업고등학교’로 수정제출하는 과정을 거쳐 1953년 4월 7일 수학연한 3년, 축산과 3학급과 농업과 3학급 등 6학급, 학생정원 300명 규모의 학교로 인가를 받고 같은 해 5월 22일에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함덕리에서는 고등학교가 중학교에 앞서 설립되는 찾아보기 어려운 선례를 남겼다.
▲학교의 변천사
1972년 7월 문교부의 부실 농업계 고등학교 정비 계획에 따라 학칙변경(교명 변경)을 하도록 학교에 요구하였다.
‘함덕농업고등학교’는 같은 해 농업계 지원 학생수 부족으로 학교 운영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점과 시설 기준에도 미달되어 농업계 운영 어려운 실정을 들며, 상업계 진학 희망수가 상당수에 달하고 있고 지역 사회 구조로 볼 때 상업인의 육성이 절대 요청되는 시점임을 부각시켜 상업계로의 학칙 변경을 신청하였다. 같은 해 학교명이 ‘함덕상업고등학교’로 바뀌면서 상업과 첫 신입생을 맞아 들였다.
이로써 1975년 2월 제20회 농업과 51명이 졸업하면서 농업고등학교 시대는 막을 내렸고 1953년 개교한 이래 1회에서부터 20회까지 493명의 농업계졸업생 배출을 끝으로 함덕상업고등학교 시대가 열리게 된다.
상업계 고등학교로 탈바꿈한 이후 지원하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자 학교에서는 상업과 6학급을 9학급으로 증설하여 학칙을 변경인가 받고(1974.12.10) 1975학년부터 입학정원을 증원하였다.
1976년 2월 제21회 졸업식장에서 상업과 60명이 졸업장을 받은 이후 해마다 졸업생수는 늘어갔다. 당시 문교부는 병설로 운영되고 있는 중·고등학교 분리정책을 발표하고 추진하고 있을 때여서 학교이설문제가 대두되게 된다.
학교이설을 위해 ‘제주시 동부지역 특히 조천 지역세 고등학교를 설립하지 않겠다.’는 당시 김황수 교육감의 확약을 받고 1977년 2월 4일에 신흥리 입구에 5,702평의 이설 예정 부지를 안명규씨로부터 기부채납 받았다.
같은 해 5월 3일에는 학교림 2,557평을 한전발전소 부지로 매각하고 7월 1일 함덕리 955-3번지 재산 일체의 관리권을 함덕중학교로 이양하였다.
9월 1일 신축교사 12개 교실을 착공하고 10월 10일 학교림 51,650평을 매각하고 매각대금 3,631만원을 신축공사비로 충당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신교사가 완공을 보게 되었으며 1978년 7월 24일 학교를 현재의 위치로 이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제개발에 의한 국민소득 증가로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는 점점 증대되어갔으며, 이러한 욕구증대는 학교 교육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상업계 고등학교로 운영되던 학교는 보통과를 증설하여 1982년 3월 1일자로 ‘함덕종합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실업 교육과 인문 교육을 병행하게 되었다.
이 때는 상업 계열학과 18학급, 보통과 6학급, 총학생수가 1,280여명에 이르는 놀라운 양적 성장을 보였다. 학생수 부족으로 폐교 위기에까지 처했었던 학교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상 최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함덕종합고등학교는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교명을 바꾸고 교육 내용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공감하게 된다.
총동창회는 전국의 정보산업고등학교의 실태를 파악하고 동창들의 의견 수렴에 나섰으나 일부 동창들의 반발이 거셌다. 총동창회는 이사회를 개최하고 두 차례의 투표를 하고서야 총동창회 의견을 수렴할 수 있었다.
학교 측과 총동창회는 이 같은 과정을 기록한 자료와 여론을 근거로 의견을 조율한 끝에 '함덕종합고등학교’를 ‘함덕정보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개정하기로 하였다.
학교 측은 교명 변경에 따른 학칙변경을 신청했고 교육청은 이를 인가하였다.
이로써 ‘함덕농업고등학교’로 출발한 학교는 1998년 3월 1일 ‘함덕정보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 선 종 (기획실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