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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 저 당 왔다 갔다 하는 정치인을 가리켜 ‘철새’라 부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정당들은 새들의 둥지가 되는 셈이다.
정치인들이 새라면 당연히 그 중에는 철새도 있을 것이요, 텃새도 있을 것이며, 이방새(異邦鳥)도 있을 것이다. 아니 철새 축에도, 텃새 축에도, 이방새 축에도 끼지 못한 유랑새(流浪鳥)들도 있을 법하다.
어떻든 이들 잡다한 새들을 총칭해서 잡 새라 불러도 큰 잘못은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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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지방선거가 되자 제주도는 잡 새들의 싸움판이 되었다. 어느 이방새가 ‘한나라 둥지’에 날아들더니 미리 거기에 기거했던 새를 쫓겨버리다시피 했다. 아니 세 불리를 느끼고 스스로 뛰쳐나가게 했다.
그런데 뛰쳐나온 그 새는 ‘열린 우리 둥지’에 접근했다. 그러자 그 둥지를 지키던 텃새가 발끈했다. 곡기(穀氣)를 끊고 단식 투쟁을 벌이면서 철새에 대한 텃새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 결과 텃새는 철새로부터 제 둥지를 지킬 수가 있었다. 철새의 편을 들려던 동료 텃새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지원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방새-철새-텃새간의 둥지 쟁탈전이 끝나자 이번에는 유랑새 떼들이 이리 날고 저리 날았다. ‘한나라 둥지’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유랑새 한 마리는 제주시장 임기도 끝나기 전에 ‘무소속 둥지’에 몸을 의탁했다.
‘열린 우리 둥지’를 지키던 다른 유랑새 두 마리도 그 중 한 마리는 남제주군수 자리를 중도 하차하고 ‘한나라 둥지’로 날아갔고, 나머지 한 마리는 지난 지방선거 때 낙마한 이후 절치부심(切齒腐心)하다가 ‘무소속 둥지’로 날아갔다.
하지만 이들 유랑새들에게는 한가지 공통된 꾀가 있다. 자신들이 그토록 배격하던 임명제 통합시장이나마 해보겠다는 일념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꾀는 불행하게도 제주도민들에게 세태의 허무함만을 절감케 하고 있을 뿐이다. 공복의 신뢰에 대한 허무감, 명예를 쫓는 자들의 몰염치에 대한 허무감, 신의도-도덕도 아랑곳하지 않은 정치에 대한 허무감, 시민-주민을 위한다는 공약(公約)에 대한 허무감만을 가득 채워 주었다.
도지사 후보 경선을 위해 서귀포 시장에서 중도 하차한 ‘한나라 둥지’의 한 텃새는 자신의 둥지 지키기에는 역할을 잘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패하자 엊그제까지 “임명제 시장 절대 반대”에 앞장섰던 자신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려두고 그 임명제 시장도 감지덕지(感之德之)하고 있으니 이점에 있어서는 유랑새들과 닮은 형이다.
어디 유랑새들이 이들뿐인가. 퇴직한 고급공무원들이 도의원 공천이나 받아 보고자 각 둥지로 들어갔다가 실패하자 “나는 가오”하고 날아가 버린다.
이 밖에도 이 둥지 기웃, 저 둥지 기웃하며 몇 달 쯤 발 붙였다가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는 군소 유랑새들이 얼마나 많은가.
같은 유랑새 중에도 특이한 유랑새가 있다. 자기 ‘둥지’에서 도의원 공천 경쟁을 벌이다 실패하자 ‘무소속 둥지’로 자리를 옮겨 출마했다. 그러나 자신과 공천 경쟁에서 승리한 상대 후보가 사정이 있어 사퇴하자 다시 제 둥지의 공천을 받고 선거전에 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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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앞두고 온갖 잡새들이 이렇듯 어지러이 나는 모습을 보는 도민들은 재미있어 하기보다 서글픔이 앞선다.
이 산에서 “쑥국”하면 이 산으로, 저 산에서 “쑥쑥국”하면 또 저 산으로 온갖 잡새들이 몰려드는 한, 지조-신념-정의-신의-도의를 말하고 그것을 바라는 것은 못난이의 헛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래도 이땅에 지조와 신념, 신의와 도의는 꼭 되살아나야 한다.
봉황은 언제쯤 올 것인가.
김 경 호 (상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