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여 년 전의 일이다. 태국 수도 방콕의 잠롱 시장은 무보수였다. 월급이 있었지만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우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그가 돈 부자는 아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었다. 오죽했으면 그의 부인이 우동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겠는가. 일개국 수도 시장의 가정 형편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잠롱 방콕시장의 청렴성과 무보수 봉사, 그 부인의 우동 장사는 세계의 뉴스가 되어 각 국 언론사들이 앞다투다시피 보도했다.
민선(民選) 고위 공직자가 무보수 봉사하기로는 방콕시보다 제주도가 훨씬 앞섰다. 이미 반세기 전에 제주도에는 무보수 민선 도지사가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민선이었던 강성익 지사가 바로 그다. 그는 아예 ‘무보수 봉사’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결국 당선이 되었고 공약을 실천했다.
그런 점에서 강성익 지사는 제주의 잠롱이라 할만하다. 아니다. 도리어 잠롱이 방콕의 강성익이라고 말해야 옳다.
2
뭐니뭐니해도 무보수원조 격(無報酬元祖 格)인 고위 공직자는 고려-조선 양조(兩朝)에 걸쳐 요직을 지냈던 황희 정승이라 해도 잘못된 말이 아닐 것이다. 황정승(黃政丞)은 매우 가난했지만 나라에서 내리는 보수, 즉 국록(國祿)을 먹지 않고 쌓아 두었다가 흉년이 들어 백성이 굶주리면 나눠주곤 했다.
황정승은 얼마나 가난했던지 추운 겨울밤에도 온 가족이 이불 한 채로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잠결에 추위를 느낀 한쪽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불을 잡아당기면 다른 쪽에서 엉덩이가 드러난다. 엉덩이가 드러난 쪽에서도 이불을 잡아당기면 이번에는 또 다른 쪽의 엉덩이가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이런 얘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남산 광대의 춤-타령에서였다. 임금이 참석한 연회장에서 춤을 추던 광대가 “이 엉덩이 불긋, 저 엉덩이 불긋”하며 괴상한 타령을 늘어 놓았다. 왕이 불손하게 여겨 연유를 물었더니 황정승의 얘기였다.
황희 정승의 사정을 뒤늦게 안 왕이 우선 보낸 것은 달걀 한 꾸러미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그것을 삶았더니 웬걸 모두 병아리가 되다만 것이었다. 일국의 정승 황희도 이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달걀에도 뼈가 있었구나(鷄卵有骨)”.
이후 빈복(貧福)한 사람을 가리켜 ‘계란유골’이라 한다던가.
3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특별자치도 초대 도의원으로 출마할 일부 예비후보들이 유급수당(有給手當)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아직 공식 후보 등록 전이요, 법정 선거운동 기간이 아닌데도 이미 3명의 예비후보들이 당선될 경우를 전제로 그런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은 뜻 있는 일이다.
혹시 앞으로도 같은 생각을 갖고 동참할 후보들이 더 나올지도 모른다. 우리의 제주특별자치도에 제2의 황희 정승, 제2의 잠롱 시장, 제2의 강성익 지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반가운 일이 아니겠는가.
제주특별자치도의 진정한 선량이라면 도의회 의원들이 “이 엉덩이 불긋, 저 엉덩이 불긋”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존심을 갖고 고액 연봉에 집착하는 마음을 비울만도 하다. 진심으로 제주도와 도민을 위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옛날과 달리 오늘날에는 아무리 가난한 도지사-도의원이라 해도 이 엉덩이 불긋, 저 엉덩이 불긋하는 일은 없을 줄 알며,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고액 연금을 탐내는 등 물욕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일 뿐이다. 공직자가 물욕을 갖게되면 그 마음이 다른 데로 흐르게 되어 결국에는 본인-도민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
김 경 호 (상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