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60년 초에 접어들면서 중문면 지역은 인구의 자연 증가와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교육열이 날로 고조되어 갔다. 이러한 교육열에 비해 상응하는 교육시설은 없었고 경제난으로 자녀들을 타 지방 학교에 진학시킬 수도 없는 실정에 놓여있었다.
가정형편으로 매년 중학교 졸업자 가운데 50%이상이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게 됨으로 교육기관 설립은 지역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대두되었다. 인근 지역인 서귀포의 발달과 근교에 고등 원예 작물 재배가 활성화되어가자 지역 주민들은 가난을 극복하는 길은 원예기술양성으로 농가소득 증대를 가져오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주민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과수, 채소, 화훼, 원예를 필수로 하는 고등학교 설립이 필요성을 통감하던 중 1963년 6월 10일 재일 대영 플라스틱 공업 주식회사 이순천 사장이 고등학교 설립 기초 자금으로 일화 150만 엔을 희사하기로 약속받게 된다. 같은 해 9월 20일에 한화 45만원이 입금됨으로써 1964년 2월 28일에 고등학교 설립을 위한 교사가 중학교 동쪽1개 교실을 준공하게 된다. 이것이 고등학교 설립의 계기가 되어서 지역주민들은 1964년 7월에 고등학교 설립 추진 위원회(위원장 김동하)를 조직하였고, 중문원예고등학교 설립 인가 진정서를 관계기관에 제출하게 된다.
1965년 6월 22일, 중문중 구내에 재일 교포 공덕비 제막식에 참석한 이순천 사장이 고등학교 설립기금 600만원 중 절반인 300만원을 일본에서 모금하여 줄 것을 약속하였고 지역주민들은 이에 호응하여 같은 해 7월 27일 면민 대회를 개최하여 면민이 61만 9000원을 부담키로 결의하였다.
학교설립에 필요한 자금이 형성되어 1965년 10월 27일, 학교 부지 3080평을 매수하고 10월 31일자로 중문원예고등학교 3년제 6학급 설림신청서를 제주도 교육 위원회에 제출하게 된다.
1965년 11월 3일 교육위원회의 가결을 보아, 같은 해 12월 28일자로 문교부장관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고 중문원예고등학교(3년제 6학급)가 탄생하게 되었다. 1966년 3월 10일 첫 입학식을 갖게 되었으며 초대 교장은 당시 중문중 교장이던 김황수 선생이 겸직하여 중·고가 한 울타리 안에서 병설로 시작하게 된다.
▲중문상업고등학교의 변천사
중문상업고등학교는 시대여건의 변화에 따라 1972년 9월 4일자로 중문종합고등학교(원예과 3학급, 보통과 3학급)로 교명이 변경되었다가 1990년 3월 1일자로 현재의 중문상업고등학교(상업과 9학금, 정보처리과 9학급)로 교명이 바뀌게 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직원을 비롯하여 육성회 임원과 중문 관내 이장단을 중심으로 한 학교이설추진위원회가 조직되었고, 학교이설추진위원회에서 조성한 기금 1,400만 원으로 현 위치인 서귀포시 대포동 472번지에 부지를 마련하고 교사를 신축, 1984년 2월 4일 이전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문상업고등학교의 전신인 중문원예고등학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 지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학교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제주도교육위원회 지정연구학교로써 ‘우량감귤 묘목의 뿌리 연구’, ‘kiwi fruit의 번식에 관한 연구’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하였고, 새마을 교육 최우수학교(문교부장관상), 치산 녹화 우수교(제주도지사상), 홍보활동 우수학교(교육감 표창), 자연보호 우수학교(서귀포 시장상), 학교조림 우수교(제주도지사상) 등 학교 환경 개선과 지역사회 교육 발전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특기할 만한 것은 ‘농구부’를 창단하여 도내의 각종 대회를 석권했음은 물론 전국대회에 출전하여서도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써 ‘농구’하면 중문원예고를 떠올릴 만큼 중문 지역이 농구의 본고장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사회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국화전시회’는 1985년 원예과가 폐과될 때까지 총 16회를 개최하여 원예과가 제 몫을 톡톡히 해냈음은 학교 역사에 남을 빛나는 자취였다.
1972년 중문종합고등학교 시절의 초반(농업계 종합고 13년)은 대내외적으로 원예과 중심의 학교, 후반(상업계 종합고 7년)은 상업계 중심의 학교였으나, 17회에 걸쳐 졸업한 보통과 졸업생 들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 전반에 진출, 각계각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84년 현 위치로 이설하면서 안정된 기반 위에 교지 ‘天帝’를 창간하였고 ‘천제축제’를 처음으로 개최하는 등 학생이 주체가 되는 자기 주도적 교육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1990년대로 접어들어 국가차원의 실업 교육정책에 따라 중문상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 본격적인 상업계 고등학교로 거듭나게 되었다.
1998년 학칙을 변경, 상업과 3학급을 폐과, 경영정보과 3학급을 신설하므로써 정보처리과 9학급, 경영정보과 9학급의 체제를 갖추었다. 2000학년도 교육계획 실천 최우수 학교 표창, 실업계 고교 교육평가 최우수 학교 선정, 환경교육 실천 전도 고등학교 최우수 표창에 이어 2001년 환경보전 실천 사례 최우수학교 표창을 받았다.
중문상업고등학교는 2006년 2월 7일 제38회 졸업생을 배출하기까지 총 졸업생수 6,431명의 동량을 길러낸 지역교육의 터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여왔다.
▲학교의 교육활동
중문상업고등학교의 교훈은 ‘勉學力行’이며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동백꽃’이다. 교훈의 상징은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교풍토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중문상업고등학교의 교육은 21세기 새로운 첨단지식정보화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추어 우리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진취적이며,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갖춘 창의성 있는 인재양성에 교육의 목표를 두고 있다. 이와 더불어 휴머니티를 간직한 도덕성을 강조하며, 특히 환경의 소중함을 알고 가꾸어 나감은 물론, 건강한 심신을 지닌 인격자로서의 성장할 수 있도록 인격도야에 힘쓰고 있다.
역점교육시책으로 첫째, ‘자랑스런 청송인상’ 시상을 마련하여 실천중심의 인성교육 강화와 청송인으로 자긍심과 애교심 함양에 주력하고 있다.
둘째, 정보활용능력 신장을 위한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1인 1기능 이상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지도하며, Using반의 활성화와 교내 기능경진대회를 실시하고 있다.
셋째, 푸른솔 정원 웹사이트 운영을 통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친환경 의식의 고취와 환경문제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있다. 학생들은 미래 우리사회의 주인으로 환경지킴이로서 자연사랑에 대한 실천의지를 함양시켜 나가고 있다.
이 외에도 중문상업고등학교는 학생들의 꿈과 이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교육시설의 현대화에 주력해 왔다. 넓은 잔디 운동장과 실내수영장이 갖추어진 체육관, 6개의 최신식 컴퓨터실, 학교 복지실,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연정원 청송원, 도내 제일의 식단을 자랑하는 친환경 급식소등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며, 학생들의 학과공부 외 취미와 소질향상을 위한 각종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 하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동아리는 댄스(피클쿠루), 그룹사운드, 방송, 민속, 가야금, 컴퓨터(USING) 등에서 20여개가 조직 운영되고 있다.
강 선 종 (기획실장/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