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부스가 발을 디딘 아메리카는 과연 신대륙인가? 콜롬부스가 처음 아메리카에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이미 500여 부족에, 6천만 내지 7천만의 사람이 고유한 문화를 일구며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중남미와 북미주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살아온 해묵은 땅이다. 우리가 아메리카를 신대륙이라고 일컫고 이 땅이 ‘발견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수정되어져야 하며, 콜롬부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콜롬부스가 그 옛 대륙과 유럽 사이의 ‘왕복 항로’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이 두 지역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거기에 과거부터 살고있던 본토인들의 관점에서는 도리어 처음으로 총을 든 백인 침입자들을 발견한 사건이었을 수조차 있다. 말하자면 본토인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기기 시작한 사건을 유럽인들은 '신대륙 발견' 사건이라고 일컫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인들이 매년 10월에 ‘콜롬부스의 날’로 기념하는 그날을 본토인의 후예들은 그 슬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오늘의 상황에서 미래를 새롭게 그려 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날’로 삼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이 대륙을 ‘신’대륙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것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 중심의 역사 진술에 길들여져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역사란 이렇게 쉽게 지배자 중심의 이야기로 전도될 수 있고, 우리는 이렇게 쉽게 허구에 지배당할 수 있다. 너무도 쉽게 지배 세력이 주입한 정보를 따르면서 역사를 왜곡하는데 동조할 수조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제주사도 지배자 중심의 역사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탐라왕국 천년의 역사를 찾아 긴 항로를 시작하면서, 콜롬부스가 찾았다는 아메리카와 닮은꼴이 되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 솔직히 우리는 탐라왕국의 기나긴 역사를 외면하며 살아왔으며, 우리 주체의 역사를 버리고 저 부패한 왕조사에 편입되어 제주사를 왜곡하면서 수동적인 삶을 영위하며, 제주인의 주체적인 역사정립에 대한 관심은 안중에도 없었는지 모른다. 제주도에 언제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과거 왕조사의 일부분으로 여겨졌던 제주사를 새롭게 복원하는 길은 없는가? 제주도가 섬이 된 이후 신석기시대에도 제주도에 사람이 거주했다는 사실은 고고학의 발굴로 증명이 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초기 철기시대에 제주도에 존재했던 탐라국의 건국과정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제주도는 일찍이 제주사정립위원회를 구성하여 탐라 기록물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적잖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이다.
과거의 기록물들은 사라지고 또한 폐기돼 제주의 역사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료가 부실하다. 기록이 없는 탐라왕국이 아니라 역사가 바로 정립된 탐라왕국을 위하여, 역사가 살아 숨쉬는 제주특별자치도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기록물을 역사가치로서 관리를 체계화하고, 더 늦기 전에 제주사를 정립해 제주특별자치도의 문화유산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특별자치도 출범에 맞춰 ‘탐라기록물관리소’라는 조직을 정식 직제로 신설, 운영키로 했다는 보도이다. 국가기록원 산하 기관이 아닌 제주특별자치도 직속의 탐라기록원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제주의 역사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키 위한 출발점인 동시에 역사정립의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특히 삼을나 설화도 탐라국의 건국설화로서 신화적 요소도 중요하지만, 사실적 요소에도 중점을 두어 최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 관 후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