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과정도 중요하다
열린우리당이나 김태환 도지사 입후보 예정자나 참 딱하다.
5.31 지방선거를 불과 26일 앞둔 시점에서 도지사 후보 공천
을 둘러싸고 보여 준 열린우리당과 김 지사의 행동은 그야말
로 코미디와 흡사하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4일 김 지사의 당 후보 공천 방침을 하루
만인 5일 뒤집었고, 김 지사도 이에 질세라 바로 입당 신청
을 한 지 하루만에 이를 취소했다. 장군멍군식 뒤집기와 말
바꾸기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열린우리당은 김 지사의 신상 문제 때문에 입당을 취소했다
고 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공무원 선거 개입 혐의가 생각보
다 심각해 공천 방침을 취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열린우리당의 하루만의 당 공천(예정) 번복에 김 지사도 할
말을 했다. "(그렇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맞받았다.
결국 김 지사는 지금까지 국민회의-무소속(제주시장)-한나라
당(도지사)-무소속-열린우리당(입당 신청)-무소속의 복잡한
행로를 밟게 됐다.
물론 열린우리당이나 김 지사 모두 오락가락 할 수밖에 없었
던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양새가 썩 좋지
않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도민들
이 어리둥절해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김 지사의 입당을 하루만에 거부할 거면 애당
초 왜 입당하라고 손짓을 했으며, 입당 신청을 받아들였는지
이해가 안간다. 더구나 신뢰를 더 중시해야 할 여당이 이렇게
쉽게 손바닥을 뒤집어도 되는 건지,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민
망스럽기 짝이 없다.
김 지사의 말 바꾸기 또한 정도를 넘어섰다. 한나라당을 탈당
해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인 소신
이므로 탓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좀 더 솔직하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밖에서는 줄곧
열린우리당 입당설이 나돌았지만, (끝까지) 무소속 출마를 천
명했었다. 결국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다'는 속담을
입증한 셈이 되고 말았다. 무소속 출마를 밝히면서도 내심 한
쪽으론 열린우리당에도 마음을 뒀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선거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선거를 축제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선이 최선책이지만, 정정당당
하게 일관된 정책과 소신으로 당선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
면 후보를 내는 정당이나 후보 모두 무엇보다 신뢰를 바탕으
로 선거전에 임해야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지만
정치도 생물이라고 했다. 정치적 소신에 따라 야당에서 여당
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말(馬)을 바꿔 타거나, 당을 떠나 무
소속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어제의 동지
가 오늘의 적으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바뀌기도 하는
곳이 정치 세계다.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허용되는 곳도 정치판이다. 하지만 나
름대로 뚜렷한 명분이 있어야 하고, 국민들(또는 유권자)의
공감대를 토대로 해야 한다.
생물체가 정체하지 않듯이, 정치도 토양과 환경에 따라 생존
을 위한 수단을 찾게 마련이다. 여기서 토양과 환경은 곧 유
권자인 셈이다. 유권자들의 의중을 제대로 읽고 지향할 바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 당선은 그 다음의 문제다. 우선 이런 기
본 자세를 전제로 선거에 나서야 한다.
열린우리당의 갈팡지팡과 김 지사의 계속된 말 바꾸기가 지
적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선거가 임박하지 않은 시기라
면 모를까, 눈 앞에 둔 시점에 비상식적인 공천 정책과 말 뒤
집기라니 정말 딱한 노릇이다.
특히 이번 제주도지사 선거는 역대 도지사 선거보다 중요한
선거다. 특별자치도 첫 도지사를 선출하는 선거이기 때문이
다. 이미 각 정당의 후보, 또는 무소속 후보가 결정돼 정책
대결의 장이 돼야 할 텐데, 참으로 유감이다.
이제 더 이상 공천 싸움으로 지샐 시간이 없다. 열린우리당이
나 김태환 입후보 예정자 모두 하루 빨리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어차피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므로 정책과 소신과 인물
됨됨이로 유권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김 광 호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