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채 풀리지 않은 이른 봄에 누런 잔디 사이로 제일 먼저 돋아나는 것이 잡초다. 매서운 바람을 뚫고 쑥쑥 자라나는 잡초를 보면 왜 저리 빨리 돋아나 고생을 하는가 싶어 안쓰럽다. 제일 먼저 봄을 안고 달려와 사람들의 시린 마음에 희망을 주려는 것일까. 아니면 늘 뽑히는 자신의 운명을 다지려는 듯 뿌리를 깊게 내리려고 일찍 서둘렀을까. 그런 잡초를 보면 귀엽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뿐이다. 햇살이 따스해지면 잔디도 푸른빛을 띤다. 그 무렵이 되면 잡초는 더욱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박는다. 그러면서도 불안한지 이제는 꽃까지 피우며 애교를 부린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뿌리 채 뽑힐 것 같은 불안 속에서도 용기와 도전을 잃지 않는 잡초를 보면 그 삶이 참으로 건강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잔디밭이라고 명명되어진 곳에 뿌리를 내린 잡초의 삶. 그로 인해 시련을 많이 겪지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잡초를 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그런 잡초처럼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소박하게 살면서 한 생애 동안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81년의 직장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 20일 만에 숨진 미국의 윈스턴 할아버지가 며칠 전에 화제가 되었었다. 로스엔젤레스 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로스엔젤레스의 MTA사에서 근무하다가 퇴직했던 윈스턴씨가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친구와 동료 직원들로부터 ‘미스터 윈스턴’으로 불리던 그는 1925년부터 81년간 버스와 기차의 청소 일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아내가 숨졌던 1988년에 단 하루만 결근하고 지각하거나 조퇴한 적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근무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은퇴하던 날에도 ‘아직 건강하다’고 자랑했던 그는 몇 주 지나지 않아 숨졌다. 그에게 있어서 일은 곧 생명이요 삶의 에너지, 즉 동력이었다.
미국 장수학자 토머스 펄스가 100세 넘은 노인 169명을 조사했더니 평균 78세까지 생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결국 오래 산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자신이 할 일 없다고 느낄 때 무기력해지며 그것을 넘어서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해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 세상 살면서 편한 삶을 사느냐 어려운 삶을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무 피상적이고 무책임한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더 생각을 해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잡초는 자신이 배치된 곳이 ‘잔디밭’이라 명명 되어지는 이유 때문에 언젠가 뽑힐지 모르는 운명이다. 잔디밭 속의 잡초만큼 불안정한 삶도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열심히 산다. 바람과 햇볕이 강할수록 뿌리를 깊게 내린다. 생각해 보건데 ‘잔디밭’이라고 해서 잔디만이 존재해야 하며 그 외의 것들은 배재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간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을 때 저자라고 명명되는 사람에게 저자를 오로지 귀속시키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책이란 저자만의 순수한 영혼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외부성을 함축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섞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책이다. 그런 면에서 잔디밭 이라고 해서 잔디만이 주인공이어야 된다는 생각 또한 잘못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잡초가 잔디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할 이유도 없다. 잡초와 잔디는 분절의 관계이다. 잡초와 잔디 말고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분절된 마디들로 관계되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완전히 분할 된 관계가 아니라 대나무의 마디처럼, 몸의 관절처럼 접혔다 펼 수 있으면서 연결이 되어있다. 그런 커다란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분절이 고착적이냐, 유연하냐에 따라 삶을 바라보는 생각이 다르며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인 일은 더욱 인간을 역동적이게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이 위치한 환경에서의 일이 힘들다하더라도 ‘일’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요소임을 부인하지 못한다.
일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든, 긴장된 상태에서 일을 하든 분절된 관계들 속에서 생명력을 연장시킬 수 있는 것이 일이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훔볼트는 “일은 먹는 것이나 자는 것보다 인간에게 필수적”이라고 했다. 일하는 것이 곧 살아 있다는 증거임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이른 봄에 돋아나는 잡초의 부지런처럼 인간이 일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끼리라.
잡초가 땅에서 뿌리가 뽑혀져 시들어가는 것처럼 윈스턴 할아버지에게 은퇴는 에너지의 근원을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영광스런 은퇴다.
자신의 일에 만족을 하며 긍정적인 태도로 평생을 살아온 데 대하여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잔디와 잡초가 어우러진 세상, 그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잡초, 미스터 윈스턴 같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삶은 생기가 돌고 아름답지 않을까?
강 연 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