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제주 목판본 금광명경문구 고려조 발간 유일본 사실관계 확인
13세기 제주 목판본 금광명경문구 고려조 발간 유일본 사실관계 확인
  • 김용덕 기자
  • 승인 200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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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판각본중 最古 추정 …상ㆍ중ㆍ하권으로 구성

고려 충렬왕 22년인 1296년 제주도의 묘련사(妙蓮社, 지금의 대각사로 추정)에서 판각(板刻)된 금광명경문구(金光明經文句)가 현재까지 제주도에서 주조된 목판본 가운데 가장 시대가 앞선 것일 뿐 아니라 고려조 제주도에서 발간된 유일본(唯一本)임이 사실(史實)로 확인됐다.

금광명경문구는 해인사에 보관돼 있는 재조대장경판(再雕大藏經板)이 주조(1236-1251)된 후 45년이 지난 1296년 충렬왕 22년 제주시 서쪽에 위치한 묘련사에서 발간된 사찰판본(寺刹板本)으로 간행됐음이 확인됐다.

금광명경문구가 제주도 묘련사에서 발간됐다는 근거는 금광명경문구의 하권 말미의 간기(刊記)에 ‘금광명경문구소권하(金光明經文句䟽券下) 원정이년고려국제주묘련사봉선중조(元貞二年高麗國濟州妙蓮社奉宣重彫) 간선폭포사주지선사 안립(幹善瀑布寺住持禪師 安立)’이라고 적혀 있다는데서 확인됐다. 이는 ‘금광명경문구가 1296년(고려 충렬왕 22년) 고려국 제주 묘련사에서 폭포사 주지 선사인 안립의 주도(幹善)하에 판각(重彫)됐다’는 내용이다.

제주에서 금광명경문구가 간행된 1296년은 삼별초가 1270년 11월 제주에 입도한 후 1273년 4월 여몽연합군에 의해 진압, 그 후 법화사의 중창불사(1269-1279)가 완료된 지 17년이 지난 시기다. 당시는 원의 지배세력이 매우 막강하던 때였다. 이런 때 읍성과 가까운 묘련사에서 판각한 금광명경의 문구는 당시 승려들이 국가적인 어려움을 금광명경이라는 불력을 통해 국난을 소멸하고자 했던 의지의 표명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금광명경문구가 제주 묘련사에서 판각됐음이 확인된 것은 서귀포시청 윤봉택 문화재담당이 그동안 일반자료로만 전해오던 것을 1934년까지 금광명경문구 권하 1책이 보전됐던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과 1938년 당시 금광명경문구 권하 1책을 직접 조사, 사진으로 인화 편집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한편 금광명경문구는 천태종의 창시자인 천태대사(天台大師, 중국 수나라 538-597)가 금광명경의 어려운 구절에 대해 풀이한 것으로 그의 제자인 장안대사(章安大師, 561-632)가 기록한 주석서로 상중하권으로 돼 있으며 천태종의 오소부(五小部)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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