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의 딜레마
농협의 딜레마
  • 김용덕 기자
  • 승인 200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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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의 괴리

최근 농협관계자와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자연히 얘기의 중심은 1/2간벌에 맞춰졌다.
“왜 잘 안되느냐, 실적이 겨우 50%대에 머물렀는데 이달말까지 목표량은 채울 수 있겠느냐, 그래도 고생한다”
“(농가들이)잘 참여를 안한다. 우리와 시군당국에서 독려를 하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라”
대충 이런 얘기였다. 요즘 같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였다.
그러다 ‘농업의 근본이 무엇이냐’를 또 얘기가 오갔다.
“예전 같으면 농사는 우선적으로 생산량 증가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다. 지금은 유통이다. 유통을 모르면 농사를 지어도 그건 어린애 장난과 마찬가지다” 얘기는 계속됐다.
“유통은 농촌의 현실이다.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 수 없으면 그 건 자급자족이나 마찬가지다. 자급자족하자고 농사짓는 사람 요즘 없다. 그래서 고품질 농산물 생산이 중요한 것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 관계자의 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농민들이 이해를 해주지 않는다.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들을려고도 하지 않는다”
현실을 알면 알수록 더 큰 괴리감만 쌓여 간다는 게 이 관계자 말의 핵심이었다.
지금 1/2간벌이 바로 여기서 비롯됐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다독거리는 사람 따로 있고 하는 사람 따로 있고 불 구경하는 사람 따로 있다. 그러나 이게 과연 현실적 괴리인지는 더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균형있는 당근과 채찍 필요

요즘 1/2간벌 농가참여를 위해 도와 시군당국, 농협 등 생산자단체는 간벌 참여농가에게 상당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시설하우스 전환시 저리자금 융자 지원, 각종 사업 우선 혜택, 대체작목 지원 등 많다. 간벌독려를 위한 당근이다.
그러나 참가를 하지 않는 농가에겐 고작 지원불이익이라는 말 뿐이다. 채찍치곤 너무 약하다.
당근 맛을 알아버린 당나귀에게 고작 한 대의 채찍은 당나귀를 산으로 몰수도 있다. 말 안듣는 당나귀에게 그래도 시군과 농협은 너무 관대하다. 한마디로 패털티가 없다.
이와 관련 지난 21일 CJ푸드시스템과 제주산 농산물 유통협약체결 조인식차 내려온 이연창 농협중앙회경제대표이사는 “제주지역 실정상 감귤 1/2간벌을 위해 인센티브도 좋지만 미참여 농가에게 강력한 패널티를 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것은 조합이 알아서 해야 될 일”이라고 말했다.
일순 맞는 말이다. 해당 지역 조합이 1/2간벌과 관련 참여농가에겐 인센티브, 불참농가에겐 패널티도 주고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도하는 중앙회가 조합에 책임을 돌리는 일은 너무 무책임하다. 하나의 지침수립은 해야 되지 않겠는가.
간벌 2/1미참여농가 즉 무임승차 농가에게 1/2간벌 참여 농가와 같은 농자재보급, 계통출하, 계약물량접수, 융자지원 등이 가능하다면 이는 균형없는 당근과 채찍이다.

어쩔 수 없는 농협

농협 모 지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 간부직원과 차 한잔을 마시며 담소하다가 역시 1/2간벌 얘기가 나왔다.
“요새 근황이 어떠냐”고 물었다.
“말도 마라, 한 농업인 과수원에 갔더니 자신이 원하는 곳에 직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이 것 자르라, 저것 자르라 하는데 그게 간벌이냐, 결국 실랑이만 벌이다 간벌을 취소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 농가에는 강력한 패널티를 주면 되지 않느냐, 계통출하도 받지 말고 자신이 알아서 팔던지 생산하던지 관여안하면 될 게 아니냐”고 의견을 달았다.
“우리도 그러고 싶다. 그러나 이들이 누군가. 팔리지 않으면 트럭에 감귤 잔뜩 싣고 와선 도청 앞마당에 뿌리고 감귤농가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아닌갚
이 관계자는 “결국 농협은 농업인을 위한 조직으로서 (농민을)달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1/2간벌이 안돼 비상품과가 출하되고 이게 원인이 돼 가격이 떨어지면 그때 가서 또 사들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제주감귤. 더 이상 농협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인가.
과연 어쩔 수 없는 농협인가. 이게 바로 농협이 갖고 있는 딜레마라면 딜레마다.

김   용   덕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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