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가고 어느덧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봄이 왔다. 지난 겨울은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겨울이었다. 의무소방원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겨울 속 내 기억에 남는 10살짜리 작고 어린 환자.
찬 바람 속 여느때와 다름없이 상황실에서의 지령은 내려지고 우리는 구급차에 몸을 옮기게 되었다. 신고자와의 전화연결 속 다급한 목소리의 아주머니는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맥박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화 속 아주머니의 말속에는 언제 호흡정지가 시작됐는지 알 수 없다는 대답과 구급대가 도착하더라도 최소 5분은 이미 지난 상황이 될 것이라는 현실이 나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우리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이미 아이에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온몸이 퍼렇게 변해서 청색증을 나타내고 있었으며, 숨을쉬지 않고 맥박도 뛰지 않았다... ‘죽은걸까? ... 설마... 가망이 없겠다...’ 이런 생각이 나의 머리 속을 휘저어 놓았다. 옆에 구토한 흔적과 아이에 몸상태를 보아서는 아이가 경기를 해서 토를 하다가 이물질이 기도를 막은 듯 했다. 당황스러웠고 안쓰러웠다.
그 때 우리 구급대원 한명이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나는 보조를 시작했다. 단 1%의 가망성이라도 놓칠 수 없기 때문이었을까 모든 환자를 대할 때 그렇지만 이 어린아이의 생명을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바램을 아이가 알아주기나 한 것일까. 아이는 기도를 막고있던 이물질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얕은 숨을 내쉬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이가 숨을 토해내고 맥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맘속에 탄성과 감격이 교차했다.
그렇게 돌아와준 아이가 고마웠다. 아이는 몸이 지쳤는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구급차 안에서 혈중 산소수치가 30%까지 떨어진 것을 체크했고, 그 순간 나와 우리 구급대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뇌손상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그러면서 또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송하는 1시간동안 나의 머릿속은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송 중 구급차안에서 갑자기 깨어나 우는 어린아이는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병원에 도착하는 내내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듯이...
병원을 나오면서 아이가 살아나 준 것 만해도 고맙지만 혹여 머리를 다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 병원문을 나서게 되었다.
며칠 후, 한분의 아저씨가 우리 파출소를 방문했다. 그 아저씨는 그 아이의 아버지라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아이가 괜찮아 졌다며 아이가 스스로 우리 덕분에 살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멀쩡히 살아났다는 얘기를 전하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일 이후 구급대가 있었기에 살 수 있었던 그 아이처럼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직은 많이 있다고 환자한명의 생명이 그 다음날을 준비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감격하게 한다. 또한 심폐소생술 교육을 갈 때 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심폐소생술이 조금 더 많이 보급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함께 가져본다.
문 석 준 (서귀포소방서 성산파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