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어
표 어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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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체의 희망을 포기하라“
단테의 신곡(Divina Comedia) 지옥편의 첫 머리에 나오는 표어이다.
14세기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는 그가 전생애에 걸쳐 체험하고 묵상한 인류사의 온갖 희노애락을 용해시켜 불후의 명작인 대서사시를 만들어내었다.
신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되었는데, 단테 자신이 등장 인물이 되어, 피안의 세계를 순례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아치 형으로 된 지옥문에 이르렀을 때, 거기에는 앞에 인용한 표어가 커다랗게 쓰여져 있었다.
이에 따르면 지옥이란 가느다란 희망도 없이 존재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크든 작든 각각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따라서 단테의 해석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천국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신곡이 사랑의 깊이를 통해인간의 정화와 영혼의 정진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
표어는 간단한 경구로 나타내어 사물이나 사태의 급소를 꿰뚫어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촌철살인’ 이란 말이 있듯이 짧은 어구 몇 마디가 우리의 페부를 짜르는 것이다.
그래서 이루어지는 현상일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는 각종 표어, 혹은 구호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각종 구호의 홍수 속에 잠겨들어 꿈틀거리는 사이에 저녁을 맞는다.
그런데 시시각각으로 쏟아져 나오는 표어나 구호들이 대부분 뿌듯한 감동을 주는 내용이 아니어서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결사 반대”, “너희들의 죄악이다”“물러가라” 등등 상대방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내용의 구호들이다.
폭풍같이 거칠은 이 언어들에서 우리는 살벌한 전율에 몸을 떤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따스한 가슴이 거기에는 없다.
우리는 어느새 상대를 말살시켜야만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오만한 이기주의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일까?
물론 이렇게 메마른 언어의 표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시간, 하루 1분이면 충분합니다.”공익 광고의 표어로 요즘 자주 들을 수 있다.
잔잔한 미소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표어를 듣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 때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강인한 힘과 따스한 정을 되새길 수 있는 것이다.
“느리고 작고 불편하게” 얼마 전에 연수회의 성격을 띄고 있는 모임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회합 장소의 현관을 들어서는데, 즉각 눈에 들어오는 것이 위의 표어가 쓰여진 현판이었다.
기계 문명과 무한 경쟁, 그리고 소비가 행복임을 신봉하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너무 황당하고 시대착오에 젖은 말로 들린다.
그러나 그것이 피폐해 가는 자연 환경과 삭막해지는 공동생활에 윤활유와 같은 작은 희생을 제공하여 아름다운 삶으로 바꾸어 나아가자는 취지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여유로운 느림, 겸양의 작음, 즐거운 불편을 행동으로 옮길 때, 우리의 환경과 이웃은 생명을 찬미하는 우렁찬 코러스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미덕으로 보이는 “빨리빨리, 큰 사람, 편리의 추구“ 가 하늘과 땅과 물, 그리고 우리들의 마음을 극도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주 작은 우리의 노력과 희생이 샘물처럼 스며들 때, 모든 오염을 정화하고 방지하는 바탕을 마련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미천한 자로 여기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도 더 작은 자로 평가하는 사람은 축복 받은 자이다.“ (프란치스코)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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