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의 제주로
글로벌 시대의 제주로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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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속담에 ‘두불 자손 더 아깝다’라는 말이 있다. 손자의 사랑을 표현한 말인데 내 할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손자는 시골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하고 방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벽장 안에 있는 바구니를 먼저 내려놓는다. 
속을 들여다보면 언제 올지 모르는 손자를 기다리며 몰래 담아둔 떡이 할머니 손등처럼 굳어있곤 했다. 할머니가 바구니에 채워 넣은 것은 다름 아닌 손자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었다.
90세가 다 되도록 점방(구멍가게)을 하면서 모아둔 돈을 자식 환갑잔치에 쓰도록 내놓는 당당함을 보이기도 했다.
남부끄러우니 이제는 그만 일하고 자식 집에서 편히 지내라고 해도 번번이 아들의 청을 물리셨다. 그 거절 속에는 병들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려는 제주인의 꿋꿋한 정신이 들어 있다. 그런 할머니의 피가 내 몸 속에도 흐르고 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도 자식에게 기대하지 않고, 혼자 생활을 꾸려나가며 자식의 생활을 간섭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생활을 간섭 받지도 않는 강인함은 비단 내 할머니뿐만 아니라 제주 할머니들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대부분 외지인들은 제주여성 뿐만 아니라 도민의 성격을 말할 때 아양 떨 줄을 모르며 무뚝뚝하다고 말한다.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는 제주 사람의 성격이 고집스럽게 보이고 때로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제주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면 제주 사람의 진솔한 맛을 알게 된다.
육지에서는 오이냉국을 만들 때 소금으로 맑게 간을 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시원한 물에 된장을 풀어서 간을 한다. 처음에는 텁텁한 그 맛에 익숙하지 않지만 조금 지나면 그 속에서 배어나오는 진한 국물 맛을 느끼게 된다. 제주의 맛은 그런 것이다.
음식문화가 그 지역사람의 성격을 대변하듯이 제주 된장 냉국은 제주 사람들과 비슷하다. 
제주사람의 진면목은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의 맛을 본 후에야 진정 느낄 수 있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은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며칠 머무르다 가는 제주여행 길에서 깊숙이 녹아있는 제주인의 정을 느끼고 간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제주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제주의 첫인상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제주인의 장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며칠 전 바다를 바로 앞에 둔 해수 목욕탕에서 제주 할머니 한 분과 관광객들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제주 할머니는 친절하게 어디에서 왔느냐, 어디어디를 관광했느냐 하며 관심을 보였다.
관광객들은 자신들이 관광한 곳을 얘기하였고, 할머니는 더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내 얼굴이 화끈 거렸다. 사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고 무슨 일 무엇이든 먼저 피하고 보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무뚝뚝함이 덜어졌다하더라도 여전히 제주인의 가식 없는 성격 발현이 외지인에게는 불친절한 인상으로 각인되고 있다. 국제자유도시에 걸 맞는 환경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제주인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좀 더 부드러움을 드러내려는 의식이 필요한 듯하다. 요즘 거리에는 벚꽃이 피어나기 위해 몸단장을 하고 있다.
우리 몸을 지탱해온 할머니겲低鍛舅?대지가 벚꽃으로 피어나 환하게 웃듯이,
이제는 우리 마음 안에 숨어 있는 제주인의 따듯한 정을 벚꽃과 함께 화사하게 피워볼 때이다.   

강   연   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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