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에 아침이 성큼
사람냄새에 아침이 성큼
  • 김용덕 기자
  • 승인 2006.0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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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따! 비가 오네 …그래도 팔아야지"
제주시 중앙로 현대약국 일대에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한결같이 새벽야채시장이 선다. 일명 도깨비 시장. 반짝 열렸다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일대는 도내 전역에서 몰려드는 차량들로 북적인다.
새벽 3시 30분. 감자, 고구마, 당근, 쪽파, 배추, 무, 미역 등 갖가지 야채를 한 차 가득 실은 차량들이 하나 둘씩 거리에 세워진다. 어느새 이 일대는 차 세울 공간마저 없다. 4시30분. 흥정이 오간다.
“요번엔 왜 이렇게 (질이)나빠” “요즘 다 그런. 팔려는 농사꾼과 상인 그리고 이를 살려는 소매상간 오가는 투정속엔 이미 정이 흥건하다.
“10개만 갖다 줘”. 주변 한 상인의 말에 구좌 세척당근 10kg들이 10개 묶음이 바로 배달된다.
10kg 한 묶음 도매가격은 최고 1만원. 상품에 따라 최하 5000원도 받는다. 그래도 요즘 서울가락동 도매시장에서 내놓는 가격보단 좋다.
“아! 싱싱해서 좋고, 우리 것이니까 몸에 맞아 좋고, 싸서 좋으니, 다 좋은 게 아닌갚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작은 손수레에 야채를 가득 싣고 새벽길을 열심히 오가는 발걸음에, 그들의 이마에 한줄기 희망의 노래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새벽의 울림이다.
“이번 고구마는 좀 낫네, 그래 이 걸로 5박스만 줘봐”. 좌판 장사로 하루를 여는 할머니의 웃음 건네며 하는 말에 한 차량 가득 전남산 밤고구마를 싣고 온 아주머니의 돈 주머니엔 어느새 꼬깃꼬깃한 돈이 흘러들어간다.
지난해부터 초강세를 보여 온 배추와 무값은 여기서도 금값. 도내 야채소매점에서 파는 배추 2.5kg 한 포기당 도매가는 3500원. 3배 오른 가격이다. 그러나 여기서 2500원에 떼다 파는 가격이다. 부지런만 떨면 싸게 살 수 있는 이 도깨비시장이야 말로 제주의 가락도매시장인 셈이다. 다진배추 12개 묶음은 2만원에서 2만2000원. 무도 최근 ‘바람드는 현상’으로 출하물량이 줄면서 개당 1000원에서 1200원까지 높게 거래됐다. 모두 월동배추와 무다. 그러나 야채도소매점보다는 250원 싸다.
새벽 5시. 갑자기 비가 내렸다. “어따! 비 오네, 내가 비 온다고 했지?” “그래도 팔아야 지”
비 날씨에도 불구, 이른바 ‘토종나물’을 파는 이들의 바쁜 움직임속에 어스름 새벽이 몰고 온 제주아침이 깨어난다.
“여기선 거짓말 안 해, 요즘같이 어려울 때 그래도 돈 맛보는 게 어디여?, 내가 키워 내가 팔고, 사가는 사람들은 좋은 것 먹으니 여기가 바로 사람냄새 나는 곳이지, 안그래?”
아침 6시, 버스가 오가고 청소차량이 흝고 지나간 곳엔 어느새 붉은 햇살이 비쳐진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그들의 사라진 뒷자리엔 따스한 봄 햇살이 살포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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