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새로운 희망 천마학원의 탄생
제2편: 새로운 희망 천마학원의 탄생
  • 제주타임스
  • 승인 200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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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재단이 부도로 인해 비상경영체제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평소 육영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던 김봉학(작고, 전 제주은행장)박사가 1988년 9월에 학교법인 천마학원을 설립하고 본교를 인수하여 학교 정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교정은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 나가게 되었다.
1989년 5월 재단에서 많은 재원을 투자하여 본관 서쪽에 연건평 490평 규모의 4층 별관을 증축하여 부족한 교실을 확보함은 물론 500석 규모의 대강당을 신축하였다.
신축된 대강당에서는 학년별로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교양 강좌를 실시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종 행사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 외 교악대실, 미술실, 과학실, 상담실, 도서실 등 특별실을 확충하여 학생들의 특별활동을 다양하게 활성화시켜 정서함양에 도움을 주는 한편, 실험·실습 등 실기가 필요한  과목도 보통 교실에서 이루어지다가 특별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원의 정상화로 수업의 질이 높아지고 학생들에게도 변화 있는 수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되어 학습 효과도 매우 컸다. 또한 검도장, 유도장, 탁구장, 그 외 별도로 운동장에 배구장, 농구장, 테니스장 등 체육시설을 확충하여 운동부 육성은 물론 학생들과 교직원 체력 단련 및 여가 선용에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필요한 시설이 갖추어져 교육 활동하는데 불편함이 없고, 타 학교에 비해 학교 시설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천마학원을 설립한 학교인수자 김봉학 박사는 기독교 신봉자로서 도내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기독교학교를 탄생시켰다.
제주상업고등학교는 지난 1988년 학교법인 제주명륜학원에서 천마학원으로 운영주체를 바꾼 후 이사장 김봉학 박사의 뜻에 따라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학교로의 변화를 추구해 오다가 1997년 3월 26일 학교법인 천마학원 정관을 개정하게 이른다.
1999년에 제7대 교장으로 강정길 선생이 취임하면서 건학 이념인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믿음·소망·사랑의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교육 목표를 건학 이념에 맞게 제정하고, 교목을 두어 정규 교과목으로 종교 과목을 가르치는 등 교육부가 인정하는 기독교 종교 학교로 모습을 바꿔 놓았다.
1999년부터 1,2학년 교육 과정에 종교와 철학 과목을 복수 편성하여 가르치고 교목을 두어 학년별로 채플시간을 운영하게 되었다.
아울러 인성교육 시간에 기독교 정신을 가르치는 차원에서 도내 목회자와 기독교계 인사를 초청하여 학년별로 기독교 종교를 통한 인성교육을 실천해 오고 있다.
천마학원은 설립자 김봉학 박사가 별세한 후 제2대 김성인(작고, 전 제주은행장)이사장에 이어 제3대 김정온 이사장이 2000년 12월 1일 취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전마라톤하면 제주상고
1974년 제4회 제주도일주 역전마라톤 경주에서 제주상고 팀은 종전고등부기록보다 10분을 단축시킨 대회 신기록을 세워 우승을 차지하면서 제주도 육상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림 ∼신창 구간에서 일반부 선수까지 물리치고 1위로 골인한 김인섭을 비롯해 김수호, 정원식, 김광택의 활약은 대단한 것이었다.
제주상고 마라톤부가 제주도일주 역전마라톤 13회 우승의 금자탑을 쌓기 위한 주춧돌이 이때 이미 놓여졌다.
제5회 대회에서는 고등부 11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종전 기록보다 32분을 단축시킨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2연승을 차지했다.
1976년 6회 대회에서는 3연패의 영광을 차지하며 우승기를 영구히 보관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유재권이 우수 선수, 김인섭이 준우수 선수로 뽑혔고 변창보 선생은 지도상을 받았다.
노란 유채꽃 물결 속에서 도민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181㎞의 일주도로를 달린 제7회와 제8회, 1979년 제9회 대회에서도 제주상고 팀이 연속해서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결국 70년대의 각종 도내 육상 경기 대회는 제주상고의 독무대였고 이러한 현상은 80년대에 들어서도 한동안 계속 되었다.
이처럼 ‘도 역전 마라톤’하면 도내 일반인들도 ‘제주상고’를 떠올리고 선수들의 이름을 말할 정도로 제주상고는 해마다 우승을 차지하며 그 명성이 대단했다.
1980년에 열렸던 14회 전도체전에서 제주상고가 준우승을 차지하였는데 육상이 그 뒷받침을 한 것으로 언론에서 평가할 정도였다.
1981년 전도 역전마라톤 8연패를 이룰 때에는 처음으로 출전한 오태근(1학년)이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82년에는 5위에 그쳐 제주상고의 침몰을 세간에서는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다음 해인 1983년에는 권토중래(捲土重來), 1년 만에 정상을 재탈환하였다.
이 대회에서는 2개구간을 우승한 오태근 선수가 최우수선수상을, 탁덕삼 선생은 지도교사상을 받았다.
1984년 10번째의 우승을 넘보던 전통과 관록의 제주상고가 제5구간(신업 ~ 무릉)에서 고정섭 선수(2년)가 경기 중 다리 골절이 되어 구간탈락을 하게 되는 등 중위권으로 쳐져 5위를 하게 되는 이변을 낳았다.
당시 김대선(1학년)선수는 8구간에서 개인 우승을 하면서 다음 해를 기약하기도 했다.
도 일주 역전마라톤대회에서 70년 후반 전승가도를 달리며 80년대 김원탁 선수와 함께 제주마라톤의 기틀을 마련했던 제주상고 출신 이태훈(26회 졸)선수는 1984년 제14회 대회에서 일반부 제주시로 출전하여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상고의 축구부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과, 6회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함으로써 축구가 국민운동으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프로 야구, 프로배구, 프로농구 등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70년대에는 더욱 인기 있는 종목이었다.
도내에서는 남자학교의 경우 마라톤과 더불어 학교체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제주상고 또한 축구부에 많은 정성을 쏟음으로써 도민들에게 ‘축구상고’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당시 주요대회로는 전도 체육대회, 전도 종별 축구선수권대회, 백호기쟁탈 전도 청소년 축구대회가 있었는데 1977년에 제주상고는 세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여 3관왕에 오르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강   선   종 (기획실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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