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 20년(1294)에 제주마 400필을 원(元)에 조공하였으며, 고려말기에 명나라가 요구한 제주마 2,000필에 따른 목호의 난 발생과 명나라가 국내외 불안정세 때문에 북원정벌에 필요한 말을 요구했는데 우왕 12년(1386)에 양국의 합의해서 말 50필을 3년에 한 번 보내기로 하였으나 수시로 말 조공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태종9년 명나라에 공마 1만 필을 수차례로 나누어 바치기로 하였고 정기적인 세공마, 식년마 등 수시로 징마를 요구하여 국내 수요보다 명나라에 더 많이 말을 증여 또는 교역(비단, 포목 교환) 하였다고 한다.
명나라에 바치는 세공마와 종마(50~200필)는 모색, 체고, 나이(3~4세) 등을 정하여. 전국의 목장에서 선발하고 미리 길러 바치도록 하였으나 이들 세공마의 대부분은 제주목장에서 확보하였다.
세종23년 승문원에서 아뢰기를 해년(亥年)·묘년(卯年)·미년(未年)을 당할 때마다, 판비되어 온 종마(種馬)50필 안에서 원정한 모색(毛色) 마필이 만일에 적을 것 같으면, 별색 중에서 될 수 있는 마필로 충수(充數)하여 진공하여 온 지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그 종마(種馬)는 오취(烏嘴:입 주위가 검은색)·오신(烏腎:고환과 음경 주위가 검은색)·오제(烏蹄:발굽이 검은색)의 결백(潔白)한 성장한 수말 5필, 오취(烏嘴)·오안(烏眼:눈이 검은색)결백(潔白)한 성장한 암말 10필, 철청(鐵靑:검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말: 청총이) 수말 5필과 암말 10필, 오취(烏嘴)·오미황(烏尾黃:꼬리부분이 흑갈색)수말 2필과 암말5필, 흑오명(黑五明:가라말:검은색 말이 머리와 4지에 흰색이 있는 말)수말 2필과 암말4필, 조류(적다말:붉은색)수말 3필과 암말 4필을 합한 50필이었다.
1392(태조)년부터 1451(문종)년까지 약 60년간 7만필을 요구하여 약 6만 여필을 명나라로 공마와 수출하였다.
그 후 명나라가 안정되면서 징마요구도 매년 줄어들어 제주목마장에도 부담이 줄어들었으나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목장용지는 점차로 경작지화 되면서 제주마 생산은 점점 쇠퇴하기 시작되어 갔다.
명나라에 조공이나 교역한 마필수는 태조 3년(1394)부터 태종 10년(1410)까지 15년간 2만3920필이었고 태종 3년에 명나라와 교역한 말의 가격은 오승포(五升布; 다섯 새의 올이 굵은 베나 무명으로 품질은 중품)로 하였다.
대마(大馬)-상등:500필, 중마(中馬)-상등:300필, 중등:450필 중등:250필, 하등:400필, 하등:200필
태종 16년 제주안무사 오식 등이 올린 제주의 제반 시정사의에 관한 계문(啓聞)에 보면 제주에 군(郡)을 설치하던 초기에 한라산의 4면이 모두 17현 이었습니다. 북면의 대촌현에 성을 쌓아서 본 읍의 동서도(東·西道)로 삼고 정해진(靜海鎭)을 두어 군마(軍馬)를 모아 연변을 방어하였다. 그리고 선조10년(1577)제주목사 임진(林晉) 아들 임제(林悌)의 남명소승(南溟小乘)에 별방성(別防城:1소장)을 출발할 때 조방장이 말 탄 병사 열명(십(十名)이 나를 호송하였고, 홀연히 세 필의 비기(飛騎)가 사장(沙場) 끝으로부터 채찍을 휘날리며 오고 있었는데, 모두 월라마(얼룩말)를 타고 높은 갓을 쓰고 붉은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빠르게 말을 달려 왔다 갔다 하는데 그 날렵함이 원숭이와 같았다.
처음에는 놀랐으나, 자세히 보니 모두 여자들이었고 이들은 관노(官奴)들이라고 한다.
숙종28년 이형상목사 때 탐라순력도에 공마봉진에는 말을 선발하는 장면이나 목마장의 점마, 목사·판관·현감과 관료들이 이용한 승마용마, 교래대렵의 사냥시 포수와 마군의 말, 출장 온 관원들이 탔던 말(고마장:驛馬), 마감 등이 이용했던 감목마와 지방 진사와 좌수 등 양반계급층이 탔던 말, 각 고을마다 결혼식에 사용했던 말 등은 성질이 온순하며 걸음걸이(濟馬)가 좋고 외모와 모색이 좋았던 나이가 든(6세 이하는 공마대상임) 말들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농용, 마차, 연자매, 짐을 싣고 활용했던 다용도의 말을 농마라고도 불리며 밭갈이, 마차 끌기, 타마와 복마처럼 일에 활용되었던 말이다. 그리고 말똥은 보리, 고구마, 감자재배 등에 유기질 비료 또는 연료(몽골풍습)로도 이용되었다.
(44)제주마의 활용(4)에서 계속)
장 덕 지 교수
제주산업정보대학 애완동물관리과/제주마문화연구소장ㆍ제주도문화재위원